1313일의 기다림…“이제 가슴에 묻겠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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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5인 가족들 목포신항서 눈물의 기자회견

눈물 흘린 마지막 인사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16일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거치 현장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가족들은 18일 이곳에서 추모식을 치른 뒤 목포신항을 떠나 서울과 경기 안산시 등에서 미수습자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목포=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눈물 흘린 마지막 인사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16일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거치 현장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가족들은 18일 이곳에서 추모식을 치른 뒤 목포신항을 떠나 서울과 경기 안산시 등에서 미수습자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목포=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님, 권혁규 군, 이 다섯 사람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십시오.”

16일 오후 2시경 전남 목포신항 하늘에 다섯 명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는 남현철 군 아버지 남경원 씨(47)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란히 선 다른 사람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훔쳤다. 이들이 가족을 기다린 시간은 이날로 1311일. 하지만 그 기다림의 끝을 알리는 시간은 10여 분에 불과했다.

기자회견이 끝나는 순간 소리 죽여 흐느끼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끝내 오열했다. 박영인 군의 어머니는 통곡하다 쓰러질 뻔했다.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 씨(56)는 소리 내 울다 목이 메었다. 권재근 씨의 형 권오복 씨(63)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나머지 미수습자 가족을 챙겼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도 눈물을 훔쳤다. 한 유가족은 “세월호 사고 원인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하면 좋았을 텐데. 혈육을 찾지 못하고 목포신항을 떠나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수습자 가족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전해 듣고 전남 진도로 달려왔다. 단원고 2학년 6반이던 남 군은 5반 고(故) 이다운 군의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를 작사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가족들은 진도 팽목항에 기타를 세워두고 남 군의 귀환을 기다렸다. 같은 반 박 군은 만능 스포츠맨으로 통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야구 등을 좋아했다. 박 군의 부모는 아들이 원했던 새 축구화를 사고 후 뒤늦게 구입해 팽목항에 갖다 놓은 뒤 가슴을 쳤다.

양 교사는 듬직한 선생님이었다. 참사 당일 선체가 기울자 자신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다른 학생이 있는 배 안으로 향한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권 씨와 아들 혁규 군은 가족과 제주도로 이사 가던 길에 변을 당했다. 권 씨의 막내딸은 구조됐지만 베트남 출신 아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혁규 군은 한 살 어린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갈 때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안타까움과 부러움이 섞인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고대하던 세월호 선체 인양 뒤에도 8개월째 가족을 찾지 못하자 고통스러운 마지막 선택을 했다. 이들은 “세월호 선체 수색이 마무리 중이라 비통하고 힘들지만 혈육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 많은 갈등 속에서 더 이상 수색은 무리한 요구이며 지지해준 국민들을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다만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이들은 “추후 선체 조사 과정에서 혈육을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라며 앞으로 일은 정부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고 덧붙였다. 조사위원회는 내년 1월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운 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과 수색을 이어갈 방침이다.

가족들은 “국민들의 마음이 모여 세월호 인양이 가능했다. 이제 세월호에 대한 아픔을 국민들도 조금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며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18일 오전 8시 반 목포신항에서 유해 없는 추모식을 치른다. 1313일간의 기다림이 끝나는 날이다. 추모식에는 3년 7개월간 동고동락한 진도군민들도 함께한다. 이어 한 사찰에서 옷과 책 편지 등을 태우고 남은 재를 유골 봉안함에 안치할 예정이다. 이때 마른 갯벌도 태울 계획이다. 미수습자 영혼이 갯벌에 배어 있다고 믿어서다. 가족들은 같은 날 오후 경기 안산시 제일장례식장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목포=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월호#기자회견#유족#미수습#팽목항#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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