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vs 일대일로… 美-中, 아시아 패권전략 힘겨루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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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베트남은 중요한 인식 일치에 따라 해상(남중국해) 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모든 형태의 해상 협력을 안정적으로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12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의 회담에서 이렇게 합의했다고 중국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 역시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에서 좋은 조정자나 중재자가 될 수 있다. 조정이나 중재가 필요하면 내게 말하라”고 강조했다. 쩐다이꽝 주석은 회담에서 “남중국해의 항행과 비행의 자유, 자유로운 무역을 지키자”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지 말라는 그간의 중국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절한 것으로 중국의 금기를 건드린 셈이다.

집권 2기를 시작한 시 주석은 동남아 국가들과의 갈등 관리 및 협력을 강조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앞세운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로 아시아 내 경제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본격화할 태세다. 중국의 전방위 공세에 밀려 상대적으로 아시아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을 감지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위해 급하게 내놓은 전략이 ‘인도 태평양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인도 태평양(구상)’의 비전을 공유하게 돼 영광”이라며 “미국 의회가 1817년 아시아에 미군 군함 배치를 처음 승인했다. 우리는 인도 태평양에서 오랫동안 친구, 파트너이자 동맹이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도 태평양 구상에 대해 미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백악관은 (남중국해 등) 중국의 군사 경제적 공세를 걱정하는 국가들과 밀접한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필리핀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미국과 인도의 유대관계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의 미래와 세계 인류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며 인도의 인도 태평양 구상 참여를 공식화했다. 앞서 12일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인도 태평양 핵심 국가가 국장급 회동을 열자 중국 외교부는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협력 우호 발전의 시대적 조류에 순응하라”고 비판했다.

앞서 시 주석은 9일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태평양은 중미 양국을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넓다”며 경계의 뜻을 드러냈다. 시 주석은 직후 방문한 베트남에서 응우옌푸쫑 서기장과 일대일로와 양랑일권(兩廊一圈·중국-베트남 철도 건설) 협력 이행 문건에 합의했다. 베트남에서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과도 만나 “중국은 필리핀과 같은 길을 걷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일대일로와 필리핀 발전 전략을 연계하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 태평양 구상 참여에 유보 입장을 보인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일대일로 건설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답을 얻어냈다. 심지어 인도 태평양 구상의 핵심 축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도 “일대일로 구조 내 협력을 가급적 빨리 실현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관계 개선을 공식화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시 주석의 전방위 공세에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베트남통신사는 중국 관영 매체 보도와 달리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시 주석에게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법에 기초해 해결하자. 상대의 적법한 권리를 존중하자”고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동남아 국가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는 APEC 정상회의에서 “(동남아에서도)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 문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미국을 첫 번째에 놓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중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와 한국 등 주변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인 영향력 감소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이 고민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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