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전도사로 돌아온 ‘터미네이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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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인 아널드 슈워제네거
“게리맨더링 끝내자” 초당적 연설… 지구온난화-反트럼프 운동 앞장

“외쳐봅시다. 게리맨더링에 ‘아스타 라 비스타(hasta la vista·잘 가라)’!”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적으로 등장한 액체금속로봇을 총탄으로 산산조각 낼 때와 같은 살기는 없었다. 하지만 이달 3일 미국 연방대법원 앞 연단에 선 아널드 슈워제네거(70)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번에야말로 “게리맨더링(정략적인 선거구 조정)을 끝내자”는 것이다.

이날 슈워제네거는 영화배우도 정치인도 아닌 정치 개혁 전도사였다. 이달 시작된 연방대법원 새 회기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게리맨더링 위헌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진보 성향 시민단체다. 공화당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그려진 위스콘신 주의회 선거구획이 평등보호 조항과 표현의 자유를 위배한다는 주장이다. 슈워제네거는 공화당원임에도 진보 진영 편을 들고 나섰다. 당파를 뛰어넘은 ‘정치 개혁’ 메시지로 색다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슈워제네거는 이날 연설에서 “의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도 연임에 성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권자들이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대표가 유권자를 선택하는 기형적 정치 구조가 고착화돼 미국 정치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사 시절인 2010년 캘리포니아 지역구 구획 선정 권한을 시민에게 돌리는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과거는 그의 말에 진정성을 더했다.

게리맨더링 논쟁의 승부 결과는 아직 미지수다. 인종 기준의 게리맨더링은 이미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당파성을 기준으로 한 게리맨더링의 경우 그 기준이 모호하고 법원이 정치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모양새라는 이유 등으로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슈워제네거는 지구온난화와 반(反)트럼프 운동에도 나서고 있다. 7월엔 탄소 배출을 제한하는 캘리포니아주법 서명식에 참석해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사람은 단 한 명(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논란에는 ‘혐오를 박살내자(Terminate Hat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팔아 수익금을 유대인 인권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맞받았다.

공직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그는 6일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환경보호청(EPA)과 에너지부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당장에라도 (대통령에) 출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터미네이터#아널드 슈워제네거#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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