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철희]독사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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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육군은 근대 육군의 원형으로 일컬어진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유럽을 휩쓸자 큰 위기감에 빠진 프로이센은 귀족 중심의 군대에 평민이 참여하는 의무병역제를 도입하고 병참 중심의 참모본부를 설립하는 등 현대식 군제 개혁을 이뤄냈다. 그 결과 독일 통일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프랑스를 벤치마킹했던 일본 육군도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의 대승을 보고 서둘러 독일식으로 개편했다.

▷우리 육군사관학교 생도가 처음 파견된 해외 사관학교도 독일 육사였다. 독일 육사 위탁교육은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에 대한 독일 측 선물이었다. 서독의 군사원조로 이듬해 육사 24기 생도 2명이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지금까지 50여 명이 독일 육사를 거쳤고, 이들 중에서 국방부 장관도 2명(김태영 김관진)이나 나왔다. 이들은 독일 군사철학과 전략·전술을 한국군에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장 지휘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임무형 지휘’와 자유·민주주의·법치의 원칙을 군에 정착시킨 ‘내적 지휘’ 개념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8월 국군기무사령부가 김관진 장관의 독일 육사 후배들에 대한 인사 특혜를 고발한 청와대 직보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에 따르면 독일 육사 출신은 흠이 있거나 역량이 떨어져도 진급시켜 요직에 임명했으며, 육사 35∼42기 독일 육사 출신 7명 중 교수·무관을 제외한 5명이 1, 2계급씩 진급했다고 한다. 거기엔 얼마 전 ‘공관병 갑질’ 논란을 빚다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박찬주 육군 대장(육사 37기)도 당연히 포함됐을 것이다.

▷기무사의 청와대 직보 여파는 컸다. 2개월 뒤 군 인사에서 사령관을 비롯한 기무사 서열 1·2·3위가 모두 경질되는 ‘기무사 집단학살’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게 눌러진 독일 육사 출신 우대 논란은 어느덧 ‘독사파(獨士派)’라는 사조직 또는 파벌 냄새가 나는 이름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독사파라는 게 극소수 유학 기회를 잡은 군 인재들의 출세에 대한 질시와 모함에서 나온, 실체 없는 유령집단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육군#프로이센 육군#김관진#독일 육사#기무사#독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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