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는 240번 버스… 늘 ‘상처’가 타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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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만 하차’ 인터넷 마녀사냥 겪고 복귀한 운전사 동승 취재

아이 엄마의 하차 요청을 외면했다는 잘못된 제보와 가짜뉴스로 고통을 겪은 김모 씨가 28일 240번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아이 엄마의 하차 요청을 외면했다는 잘못된 제보와 가짜뉴스로 고통을 겪은 김모 씨가 28일 240번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하나 둘 셋….’

버스 운전사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어 거울을 쳐다봤다. 그제서야 오른발로 지그시 가속페달을 눌렀다. 다시 운전석에 앉은 뒤 생긴 버릇이다.

28일 만난 버스 운전사 김모 씨(60)의 얼굴에선 긴장이 느껴졌다. 그는 “아이 혼자 내렸으니 세워 달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달린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은 바로 그 ‘240번 시내버스’의 운전사다. 11일 인터넷에 올라온 목격담이 포털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쳐 가짜 뉴스로 탈바꿈하면서 ‘아동학대’ ‘막장운전’ 등의 집중 포화가 김 씨를 향했다.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됐다. 다행히 언론의 검증 보도를 통해 진실이 확인되면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던 김 씨는 일주일 만인 18일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건대 앞에서 내려 달라고 하셨던 손님, 이번에 내리시면 돼요.”

28일 오후 2시 기자가 탄 240번 버스가 서울 광진구 화양초교 앞을 지나자 김 씨는 승객 쪽을 향해 외쳤다. 한 중년 여성이 조심스레 일어나 뒷문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김 씨의 시선은 운전석 옆 후면거울에 고정됐다. 안전하게 내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삐이익.’ 버스가 출발하자 커다란 책가방을 멘 남자아이가 벨을 눌렀다. 김 씨는 ‘후’ 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 정류장에 아이가 내리자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뒤따라 내렸다. 김 씨는 출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모자(母子)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그날 이후 아이들이 타고 내린 뒤에도 속으로 3초 셌다가 출발합니다. 하나 둘 셋 하고….”

건국대 앞을 지나고 나서 김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1일 오후 6시 반경 김 씨는 아이가 내린 건대역 정류장을 출발하고 10초가량 지나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는 “1차로 쪽 진입이 불가능했다”며 창문 밖 주황색 차단봉을 가리켰다.

억울함이 풀린 탓일까. 김 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마음속 상처는 아물지 않은 듯했다. 이날 기자가 탄 240번 버스 뒷문에는 운전사 자격증이 붙어 있지 않았다. 이름과 사진이 있는 자격증이다. 김 씨는 “얼굴과 인적사항이 노출될까 봐 자격증을 떼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지금도 승객 중에는 “그 240번 운전사 맞느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한다.

버스 회사에는 김 씨 앞으로 온 편지 30여 통이 있다. 진실이 밝혀진 뒤 시민들이 보낸 사과 편지다. ‘잘 모르고 인터넷에 심한 욕설을 했다. 죄송하고 반성한다’는 내용이다.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고 싶다’며 화과자 세트를 보낸 시민도 있다. 처음 잘못된 목격담을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은 경찰서를 통해 용서를 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김 씨는 “아직은 용서하기 어렵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흘쯤 되니 240번 버스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싹 사라졌다”며 “남은 건 상처 입은 나 자신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운전석에 앉은 날 김 씨는 자신의 카카오스토리 계정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공정한 SNS 사용하기’. 그는 ‘악플 탓에 지옥과 천당을 들락날락했다. 왜 그랬느냐 따져보고 싶었다’며 당시 억울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다시 희망을 갖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을 믿어준 가족과 회사 동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앞으로 모든 이들께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고 맺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240번 버스#버스기사#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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