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때/별들이 총총한 밤/당신은 목숨을 끊었어요, 연인들이 종종 그러하듯이./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어요/이 세상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돈 매클린이 부른 ‘빈센트’의 일부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랫말 속의 ‘당신’은 빈센트 반 고흐다. 이 노래는 미친 건 반 고흐가 아니라 그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세상이라며 그를 신화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아름답지만 조금은 위험한 노래다. 현실을 제거하면 인간은 사라지고 신화가 남게 되니까.
반 고흐는 노랫말처럼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도움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죽기 1년 전에 그린 ‘붕대를 귀에 감은 자화상’을 생각해 보라. 그가 붕대를 감은 모습인 것은 귀가 잘렸기 때문이다. 그를 치료한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전체가 수직으로 잘렸다. 그 스스로 그랬는지, 아니면 두 달 정도 같이 살던 화가 고갱이 그와 다투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그랬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귀가 잘린 건 분명하다. 그는 그것을 종이에 싸 자주 출입하던 유곽에 가서 여자에게 보여줘 기절하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어난 일이다. 자화상은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1월에 그린 것이다.
그림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모습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을까. 이 그림의 핵심은 붕대로 가려진 상처, 즉 귀의 부재이다. 묘한 것은 현실 속의 그는 왼쪽 귀가 없는데 그림 속의 그는 오른쪽 귀가 없다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뀐 이미지를 화폭에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까?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이상이 스물네 살에 쓴 ‘거울’이라는 시에서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라고 하면서도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거울아니었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라고 토로할 수 있었던 사유와 성찰의 힘이, 서른여섯 살의 반 고흐에게도 있었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분열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태였을지 모른다. 자화상은 그러한 심리적 현실 속에서 태어났다. 귀에 감긴 붕대가 대변하는 상처와 광기, 실존을 도외시하면 그의 그림은 의미의 빛을 잃는다. 이것이 예술가를 신화화하지 말고 평범한 인간으로 놓아둬야 하는 이유다. 아팠으면 아팠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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