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콩고 난민 출신 토나 교수
민주화 운동 하다 15년전 한국 망명… 2008년 난민 인정받아 가족 데려와
한국, 4년전 난민법 시행했지만 병원-관공서 등서 편견-차별 여전
“한국은 난민을 보호하는 국가인가요, 감금 없는 감옥인가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온 난민 출신 욤비 토나 광주대 교수(51)는 12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난민의 인권과 사법’ 세미나에서 청중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한국 사회의 ‘아픈 곳’ 중 하나를 건드린 그는 “감옥에 갇힌 사람도 세 끼를 먹고, 아프면 치료도 받는다. (한국에 온) 많은 난민들이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감옥보다 못한 삶을 산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날 세미나에선 한국이 2013년 7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며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쏟아졌다.
토나 교수는 세미나가 끝난 뒤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난민 신분으로 살아가며 겪은 불편한 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난민 비자(F-2)를 가지고 있지만, 관공서에 갈 때마다 번번이 내 신분과 관련 규정을 설명해야 할 때가 많다”며 “공무원조차 제대로 모르는 법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민주콩고 내 부족국가인 키토나 왕국의 왕자였던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한 죄로 반정부 인사로 낙인 찍혔다. 2002년 신변의 위협을 피해 한국에 망명했지만, 삶은 처참했다. 집이 없어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아픈데도 돈이 없어 3시간 동안 길거리에 누워 있던 적도 있었다. 2008년 난민으로 인정받은 뒤에야 가족들을 한국에 데려왔다. 지금은 한국에서 낳은 자녀 2명을 포함해 5자녀를 둔 다둥이 아빠이자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 정착해 제법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편견은 여전하다고 토나 교수는 말한다. 한국에서 산 지 10여 년이 됐는데도 단지 민주콩고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공항의 에볼라 특별 검역 대상에 오른 적이 있다. 민주콩고 국립대에서 받은 경제학 석사 학위를 가지고 취업하려 하자 “콩고에 대학이 있나요?”라고 무례한 질문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고교생인 딸은 학교에서 “원숭이가 지나간다”는 인종차별적 비아냥거림을 듣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토나 교수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당시 중국과 미국, 유럽 등지로 떠난 한국인들은 사실상 ‘난민’과 같은 처지였다. 지금 난민이 문제되는 시리아, 민주콩고 등의 상황이 언제든 우리 현실이 될 수도 있다”며 열린 마음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어려움을 분담하는 책임감을 발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나 교수는 한국이 난민들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의 공간’을 제공해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세금을 내고 사회에 기여할 만한 직업인으로 살아갈 기회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온) 난민 상당수는 고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가로 활약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한국의 재정을 축내는 존재가 아니라 경제적 자산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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