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司正의 방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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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반복되는 사정정국, 재계는 납작 엎드린 분위기
‘회고적 수사’는 성공 어렵다는 과거정권의 교훈 왜 외면하나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검찰, 실적내기 수사 밀어붙인다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점 명심하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변호사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변호사
어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취임했고, 인사청문 절차가 진행 중인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여론도 호의적이라 하니 곧 임명이 이루어질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수뇌부 진용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새 정부의 사정작업에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검찰은 미스터피자의 ‘갑질 비리’를 수사하여 회장을 구속하면서 사정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개발·운용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밝히기 위하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압수·수색하면서 대대적 방산비리 수사의 막을 올렸다. 감사원은 지난 정부의 면세점 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을 감사해서 관련자들을 고발하였고, 방산비리 혐의가 드러난 공직자와 업체 관계자들의 자료를 넘김으로써 검찰에 수사 단서를 제공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과거 참여정부가 운영하던) 대통령 주재 반부패협의회를 복원해서 강력한 반부패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18일에는 대통령민정수석실 주재로 감사원 등 9개 사정기관이 참석한 ‘방산비리 근절 유관기관 협의회’가 처음 열렸다. 강도 높은 사정정국이 닥쳐오면서 재계는 납작 엎드린 분위기다.

부패 척결은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과거의 비리와 적폐를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사정활동을 강화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양한 기관의 정보를 취합하고 역량을 배분·조정해서 최상의 성과를 얻는 것은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정부의 의무다. 따라서 청와대가 사정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서 관계기관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시감(旣視感)을 느낀다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권이 교체되면 어느 정부나 예외 없이 사정의 시기를 겪었다. 내건 명분이나 조사 대상에는 다양한 변주가 있었지만 모든 사정기관이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전개 양상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수사, 김대중 정부의 환란 위기 수사, 노무현 정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비리 및 세종증권 비리 수사 등등. 직전 박근혜 정부의 4대강 사업 및 자원 비리 수사와 포스코 수사는 현재까지도 관련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회고적 수사들에 대한 평가는 과히 좋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새 정부의 사정 수사가 성공하려면 과거의 사례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먼저, 정치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처럼 오해받을 소지를 줄여야 한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사정 정국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각종 사정기관의 활동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려면 조용하게 실무적인 협의회를 운영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헌법과 법률이 독립성을 강조하는 감사원, 검찰은 자체 판단에 따라 사정을 진행하도록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경제는 경제 전문가에게, 사정은 사정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새 정부의 사정 수사는 목적을 ‘부패 척결’에 두되 그 방향은 무방향(無方向)으로, 즉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믿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사정작업은 철저하게 법적 토대 위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춘 수사라도 오래 끌면 악취가 풍긴다. 본격적인 수사는 시작되지도 않은 단계임에도 벌써 기업이 얼어붙어 위축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자칫 조사가 장기화되어 관련자나 기업들이 지레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국가적 비극이 될 수 있다.

사정의 중추기관인 검찰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번 사정 수사에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과 같은 조직의 어려움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실적에 연연하면 무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런 수사는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배려하면서, 강제수사나 출국금지를 최소화하고 기업활동도 최대한 보장하면서 신속·정확하게 비리를 척결해 나간다면, 그런 모습에 박수 치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그것이 검찰의 유일한 활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변호사
#박상기#문무일#검찰 사정 수사#부패 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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