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꽃잎보다 꽃받침의 아름다움 그림에 담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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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기다리다’ 펴낸 황경택 씨
자칭 ‘만화가이자 숲 연구가’… 자연-식물 공부하는 과정 즐거워
직접 관찰하며 치밀하게 옮겨 그려

황경택 씨의 배꽃 그림. 가지 제공
황경택 씨의 배꽃 그림. 가지 제공
‘예쁜 꽃 그림에 달착지근한 감상적 문장을 곁들여 엮은 책이겠거니….’

선입견은 첫 장(章)부터 무너졌다. 20일 출간된 황경택 씨(45·사진)의 책 ‘꽃을 기다리다’(가지). ‘만화가이자 숲 연구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저자가 책 첫머리에 펼쳐 놓은 그림에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깡마른 생강나무 가지에 간신히 매달리듯 올망졸망 돋아난 겨울눈이 본문에 소개한 첫 그림의 모델이다. 옹송그린 겨울눈이 눈과 바람을 견뎌낸 뒤 새순을 돋워내 맨 처음 꽃 그림을 보여줄 때까지 320쪽 책 분량 중 114쪽을 넘기며 기다려야 한다.

“멋지거나 예쁜 그림을 추구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땅의 자연, 특히 다양한 식물을 공부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즐겁다. 그 공부에 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내게는 그림이다. 속속들이 알고 싶은 대상을 최대한 보이는 그대로 그린 작업의 결과물일 따름이다. 꽃을 그리려 한다면 그 꽃이 나타나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들여다보는 게 당연하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뒤 만화가로 일하던 황 씨가 본격적으로 식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갉아먹는 만화 연재의 힘겨움을 몇 차례 겪고 난 뒤 ‘다른 일을 해야겠구나’ 고민하며 어릴 때 쓰던 물건을 정리하던 중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이 숲에 있음을 깨달았다. 숲 전문가와 연구 모임을 찾아다니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차곡차곡 글과 그림이 쌓였다.

“여러 만화가들과 함께 쓰던 작업실로 출근하는 길에 주운 낙엽, 나뭇가지, 열매를 하나씩 그리며 일과를 시작했다. 처음엔 중요한 특징도 잡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날마다 그리다 보니 펜화에 수채를 입힌 지금의 방식이 2008년쯤 자리 잡혔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야외에서 그리거나 작업실에 가져와서 그린다. 비결? 열쇠 복사하는 기계가 된 기분으로, 치밀하게 관찰하며 ‘안 틀리게’ 옮겨 그리는 거다.”

황 씨의 그림은 꽃 하나 그리는 데 몇 주를 소모하는 화가들의 세밀화와 다르다. 그는 “그림 한 장에 절대 그렇게 긴 시간 못 쓴다. 이번 책에서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게 목련 그림인데 2시간쯤 걸렸다”고 했다.

“그저 ‘누가 봐도 이건 황경택 그림이네’ 정도만 알아봐주면 좋겠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식물을 바라보며 쉽게 놓치는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크다. 화사한 꽃잎 아래서, 단단히 모아 붙들어주는 꽃받침이 간직한 아름다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황경택#꽃을 기다리다#숲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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