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소중견기업 83% ‘환율’ 무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달러당 1100원선 무너지면 적자 수출 뻔한데… 중기청, 1000곳 긴급 설문

중소·중견기업 10곳 중 8곳은 ‘환율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출범 이후 확대되고 있는 환율 변동성이 이들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중소기업청은 급변하는 대내외 수출 환경 극복을 위해 중소·중견기업 1000곳(중소기업 805곳, 중견기업 195곳)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8일 밝혔다.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87.3%는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책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중견기업 66.2%도 마찬가지다. 전체 조사 대상의 83.2%가 ‘롤러코스터 환율’에 속수무책인 셈이다.

환율 대비책이 있다는 기업은 49.4%가 내부적으로 관리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었다. 36.9%는 ‘환율 변동 보험’, 25.0%는 ‘선물환(先物換·미래 시점에 이뤄질 계약 환율을 미리 정해 두는 것)’으로 위험에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복수 응답).

중소기업은 수출입 규모가 작아 손익분기점 환율이 대기업보다 높은 편이다. 달러로 번 돈을 원화로 바꿀 때 환율이 높을수록(원화 가치가 낮을수록) 환전 이익이 커지는데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흡수할 여력이 큰 기업보다 적다는 의미다.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 환 손실을 전가하는 사례도 없지 않아 중소기업은 수출 기업이 아니어도 환율 문제로 간접 피해를 볼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달러당 환율이 1100원대가 무너지면 상당수 수출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기존 해외 거래처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 수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위험성이 크다.

의료기기 제조, 수출 업체인 A사는 지난해 한때 원화가치가 급등하면서 큰 손해를 봤지만 아직도 대책을 못 세우고 있다. A사 관계자는 “환율 전망이 불투명해 섣불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이제 ‘무대응이 대응’이란 말까지 나온다”라고 밝혔다.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인 B사도 뾰족한 환율 대책이 없다. B사 관계자는 “임시방편으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원자재 대금을 결제할 때 그 달러를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이처럼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을 운에 맡기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의 환 위험 헤지(hedge·손실 회피) 상품에 가입할 때 내는 보험 수수료를 비용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보험 수수료가 크지 않더라도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럽다. 은행이나 보험사들이 수출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은 깐깐하게 따져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한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큰 손해를 보고 도산 위기에까지 몰리면서 아직까지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통상정책실장은 “키코 사태 이후 중소기업인들이 환 위험 상품이란 말만 나와도 거부 반응을 보인다. 정부가 보험 수수료 지원을 확대하면서 중소기업계의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중소기업#환율#수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