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동아]불치병 단골소재 백혈병, HIV 이젠 옛말… 만성질환 수준 관리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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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사 기자의 따뜻한 약 이야기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인물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한동안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1970년 개봉한 영화 ‘러브스토리’에서는 여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려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내용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1993년 영화 ‘필라델피아’에서는 전도유망한 젊은 변호사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다양한 치료제들이 개발되면서, 최근에는 이러한 질환들도 꾸준히 잘 치료하면 평균 수명을 누릴 수 있는 만성질환에 가까워졌습니다.

 가장 극적인 예가 HIV입니다. HIV는 성관계, 수혈로 몸속에 들어와 면역세포를 파괴시키는 바이러스로, 20∼30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치료제가 없었죠. HIV 감염은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HIV 치료제가 개발되고 여러 약제를 병합해서 사용하는 ‘칵테일 요법’이 사용되면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HIV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평생 치료를 통해 바이러스를 억제하면 얼마든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질환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1985년 12월 국내에서 HIV에 처음 감염된 환자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다만 내성 발생 문제와 부작용, 매일 시간에 맞춰 여러 알의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데, 최근엔 이를 해결한 치료제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GSK의 인테그라제 억제제(바이러스 복제억제)인 ‘티비케이’인데요. 현재까지 치료 경험 없는 환자 대상 연구에서 단 1건의 내성 발생 환자가 없었을 만큼 바이러스 억제 효능이 뛰어납니다.

 그리고 티비케이와 다른 2가지 약제를 하나로 모아 한 개의 알약으로 HIV 치료가 가능하게 만든 복합제인 ‘트리멕’도 나왔는데요. 식사와 관계없이 하루 중 아무 때나 한 알을 한 번 복용하면 된다고 하니,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하던 초기 복합 요법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운 발전입니다.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약으로 길리어드의 스트리빌드라는 약도 출시돼 있습니다.

 백혈병 또한 의학의 발달로 이런 극적인 변화를 겪은 질병입니다. 그중에서도 만성골수성백혈병이 대표적입니다. 표적항암제가 개발되기 전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진단 후 평균 4∼6년 내 사망할 만큼 치명적인 질환으로, 골수이식을 못 받으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표적항암제인 노바티스의 ‘글리벡’이 등장하면서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글리벡을 복용한 환자의 6년 생존율이 88%에 달해, 불치병에서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겁니다. 이후 2세대 노바티스의 ‘타시그나’와 BMS의 ‘스프라이셀’, 일양약품의 ‘슈펙트’ 등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환자들의 선택의 폭은 더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직 국내에선 승인되지 않았지만 3세대의 새로운 약물들도 계속해서 개발, 출시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완치도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지구상에는 패혈증처럼 치료제가 없는 치명적인 질병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카 바이러스처럼 과거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질병이 갑자기 유행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인터스텔라’의 유명한 대사처럼, 인류는 언제나 그랬듯이 답을 찾아낼 것입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현대 의학은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l

ikeday@donga.com
#백혈병#hiv#불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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