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중국의 이간책

성동기 국제부 차장 입력 2017-01-06 03:00수정 2017-0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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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불을 일으켜 자신을 태우는 것이자 늑대를 제집에 끌어들이는 것과 같다.”

 지난해 9월 말 경북 성주골프장이 사드 배치 장소로 최종 결정되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거칠게 반응했다. 비판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사드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말의 대통령 선거 때까지 한국에는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스스로 한국 측에 사드 배치 철회 시한을 제시한 것이다. 그 시한은 바로 대선이다. 이후 예기치 못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탄핵 정국으로 돌변했다.

 이 여파로 박 정권이 북핵 대응용으로 추진한 사드 배치도 영향을 받고 있다. 봄이 될지, 여름이 될지 확실치 않지만 대선은 당초 예정됐던 12월보다 당겨질 공산이 크다. 야권의 대권 주자들이 너도나도 ‘사드 배치 재검토’를 외치면서 사드 배치 여론도 찬반이 갈리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을 흔들기에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매체들은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들의 사드 관련 입장을 소개하며 한국 대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잘하면 사드 배치를 막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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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를 기다려온 중국 정부는 제재 카드를 한 장씩 꺼내들고 있다. 한국 연예인 출연 제한, 중국 내 롯데 사업장 표적 세무조사, 한국산 배터리 보조금 제외, 한국행 여행객 20% 제한,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 맘만 먹으면 더 심한 제재도 가할 수 있으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외교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도 4일 베이징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을 만난 자리에서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한국의 사드 배치 가속화 움직임에 반대하며, 만약 배치가 늦춰질 경우 관계 회복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은 듯하지만 실은 한국이 먼저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한마디로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사드 배치 결정을 미루라는 요구다.

 의원단이 만난 중국 측 인사는 “중국이 (한국의) 안보를 저해하거나 직접 피해를 준 적 없는데 왜 그러느냐” “왜 한국은 중국을 불편하게 하느냐. 섭섭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북한의 핵 위협이 미국 본토를 노릴 수준이 되도록 중국은 왜 북한을 방치했느냐’고 따져 물은 의원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북한을 실질적으로 옥죌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중국이 제재의 끈을 느슨하게 한 사이 북핵 위협이 증대됐기에 사드 배치가 추진된 것이지 사드 배치가 먼저가 아니다.

 왕 부장이 미소 띤 얼굴로 일일이 악수하며 방중 의원단을 환대한 이유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거듭된 철회 요구에도 버티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사드 배치에 유연한 야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계산이다. 왕 부장은 방중 의원단을 만나기 사흘 전 공산당 중앙위원회 이론지에 사드 배치 반대를 올해 중국 외교 방향의 핵심 중 하나로 천명했다. 사드 배치 반대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이지 한국과 주고받기 식으로 협상할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야당 의원단이 원했던 ‘호랑이 새끼’(제재 완화)를 잡았는지, 아니면 호랑이에게 이용만 당하고 돌아온 건지는 시간이 지나면 판명난다. 지난해 8월 정부의 만류에도 중국 땅을 밟은 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은 국내 여론을 의식해 중국에 끌려다니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다. 중국 싱크탱크 관계자들과 장시간 토론하며 한국의 입장을 알리려 했지만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들을 ‘한국에서 온 사드 반대 의원들’로 보도했을 뿐이다.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성주골프장#사드 배치#중국#사드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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