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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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선심성 예산 지적에 “쪽지 받은적 없다” 강변

 “쪽지예산은 (내년 예산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정부는 5일 국회가 요구한 ‘쪽지예산’ 성격의 선심성 예산이 내년도 예산안에 대거 반영됐다는 언론 지적에 이같이 밝혔다. 예산 심사 막판에 실세 의원이 밀어 넣은 ‘진짜 쪽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가 예산의 비합리적 편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은 채 쪽지예산의 사전적 의미만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상임위원회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것은 내년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기준에서 쪽지예산은 들어가 있지 않다”고 밝혔다.

 국회 예결위는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필요성이 제기된 사업들을 예산심사 책자로 만들어 심사에 활용한다. 이 책에 반영되지 않은 예산을 요구하면 정부가 쪽지예산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책에 있는 사업은 검토가 가능하지만, 여기에 없는 사업은 검토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쪽지예산이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적 의미의 쪽지예산은 사라졌지만 의원들은 공식 채널을 통해 무려 4000건, 40조 원 규모에 이르는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와 국회 예결위가 비공개 심사를 통해 명확한 근거도 없이 증액사업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는 대구·경북의 대구선 복선전철 사업에 590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340억 원을 더 얹어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예산은 700억 원이다. 전남의 보성∼임성리 철도건설 사업에는 애초에 정부가 1561억 원을 편성했지만 호남지역 의원들은 예산 1439억 원을 증액하자고 요구했다. 국회 통과안에 반영된 이 사업의 예산은 2211억 원이다.

 전문가들은 “쪽지예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 세금의 씀씀이가 비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인데 단순히 막판 쪽지를 안 받는 것만으로 이런 문제점이 개선되진 않는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특정 사업에 증액을 결정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쪽지예산#예결위#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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