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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광화문에서/이원홍]박태환의 몰락과 주홍글씨

입력 2016-08-24 03:00업데이트 2016-08-2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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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 스포츠부 차장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가슴에 죄인의 낙인처럼 새겨진 주홍글씨는 지울 수 없는 것일까.

수많은 빛과 그림자를 남긴 채 올림픽이 끝났다.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빛나는 조명과 환호 속에 무대를 내려온 선수가 있는가 하면 출전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패배의 어둠 속에 퇴장한 선수도 있다. 그 강렬한 명암의 대비 한가운데 박태환이 있다.

8년 전 8월 10일 베이징 하늘엔 간간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몸이 무거워지는 박태환은 경기에 대한 긴장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였다. 1시간 정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태환은 이날 생애 최고의 역영을 펼치며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수영 사상 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따내며 역사적 영웅이 되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를 보던 부모는 감격에 목이 메었다. 2년 뒤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또 다른 전설이 될 김연아도 박태환의 미니홈피에 ‘오빠 대박’이라는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기자회견장에서 박태환에 대한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일본 기자가 푸념하던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국민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박태환은 경기를 중도 포기하고 귀국했다.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 예선에서의 성적은 최하위에 가까웠으며 예정됐던 1500m에는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 한 차례 약물 파동을 일으켰던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뒤 어렵게 올림픽에 출전한 상태였다. 그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약물 관련 전과를 비난하는 내용과 함께 경기를 포기한 투혼의 상실을 지적한 내용이 많았다. 그와 관련한 뉴스에는 ‘약해지지 말자’ ‘약한 사람 아니야’ 등의 ‘약’자가 들어가는 댓글이 유행했다.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하면서 ‘약’이라는 말을 넣어 교묘하게 조롱한 것이다.

누군가의 몰락을 보는 건 운명의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운명은 자비롭지도 잔인하지도 않고 그저 무심할 뿐이며 그 몰락과 성패의 원인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성공의 가능성뿐 아니라 참혹한 실패의 가능성이 똑같이 열려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분명 등골이 시린 일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수 있다.

팬들이 박태환에게 강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망가진 공정성에 대한 강한 욕구 때문일 거라고 본다. 공정한 경쟁이 생명인 스포츠에서마저도 약물 등의 편법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데 대한 거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경위야 어찌 됐든 박태환이 약물을 사용했던 사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고의든 아니었든 부주의한 약물 사용은 그의 운명을 처참하게 망가뜨렸다. 그러나 선수가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 한 명의 젊은이일 뿐이다. 선수로서의 과오가 크다 하더라도 그에게 남은 인간적인 삶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약물 파동 이전에 그가 열악한 한국 수영계의 환경을 딛고 세웠던 공로는 지워지지 않는다.

박태환이 언제 다시 팬들의 가슴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가 팬들의 가슴속에 돌아오려면 팬들이 분노했던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진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약물과 편법이 아닌 진정한 땀의 가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 가장 괴로울 사람은 박태환 본인이다. 고통을 통과해 본 자는 진실을 느낄 수 있다. 삶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이면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받은 자의 진정성으로 진심을 다한다면 그의 마음도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것이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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