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곽배희]가사소송 당사자는 신중하고 지혜롭게 처신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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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1973년부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한 세대를 넘어서는 시간 동안 하루에 10건 이상의 가정문제를 상담해왔다. 그 가운데 대부분이 부부 갈등 또는 이혼에 관한 것이었으니 아마 필자는 우리 사회의 이혼 문제를 가장 많이 접해본 사람일 것이다. 그간 이혼은 통계적으로 급속히 증가했고 따라서 이혼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점과 시각 또한 많이 달라졌음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자녀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부부는 이혼하면 타인이 되지만 자녀에게는 각각 부와 모로 평생 남게 되는 것이고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이의 이혼과 관련해 2심에 계류돼 있는 이혼소송에 관해 당사자가 사석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발언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기자가 ‘비보도 약속’을 어긴 것은 언론계에서 따로 논의할 문제라고 보고, 가사소송 당사자의 언행이 어떤 형식으로든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가족 구성원들이 얼마나 큰 고통과 피해를 당하는지 말하려고 한다.

이 사안의 당사자는 기자들과의 모임이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약속이 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과연 의식하지 못했을까? 필자는 이 당사자가 지금까지 본인이 주장해 온 것처럼 진심으로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면 언론인을 상대로 이혼소송의 원인과 배경을 자의적으로 알려서는 안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아무리 신뢰하는 관계라도 대화 내용이 부주의로 세간에 알려질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당사자는 결혼 과정과 가정생활에서 자신이 겪었다는 ‘고통’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초등학생인 자녀가 처해 있는 상황까지 공개했다. 소송의 상대방이 이런 기사를 보았을 때, 소송을 취하하고 재결합하겠다는 결심을 할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 결과적으로 이 당사자는 부적절한 발언이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재결합의 가능성을 거의 잃어버리는 한편으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아내에게 극심한 환멸과 고통을 안겨주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당사자가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재벌가의 사위가 되어 정신적으로 겪었을 고통과 피곤함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지켜보면서 아내 또한 얼마나 고통과 아픔을 겪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이 당사자의 배려 없음이 아쉽기 그지없다. 당사자가 겪었다는 고통은 엄밀하게 자신이 해결했어야 할 일이고 그 내용은 오직 법정에서만 공개될 일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혼을 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현실을 필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이름 있는 가문의 자녀이거나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공인의 경우 더 아픈 상처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당사자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간에 결과적으로 본인들의 이혼과 관련한 내용을 언론에 보도되게 한 것은 가사소송법 제10조(보도금지)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다. 이 조항은 ‘가정법원에서 처리 중이거나 처리한 사건에 관하여는 성명·연령·직업 등을 볼 때 누구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신문, 잡지 그 밖의 출판물에 게재하거나 방송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혼소송에 대한 판결이 최종심에서 확정되기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가사소송법 제10조는 적용될 것이다. 한국 최대의 재벌 가족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서민들의 가사소송에서도 당사자들에 관한 정보는 철저히 보호받아야 한다. 이것이 이번 사건이 안겨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사소송#이혼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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