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투자유치 달인’ 사무관… “투자 유치하려면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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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윤영주 전남도 홍보지원팀장

윤영주 사무관은 전남도 공무원 중 행정학 박사 1호다. 그는 투자 유치 성공의 요건으로 차별화된 전략과 공무원의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인센티브나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윤영주 사무관은 전남도 공무원 중 행정학 박사 1호다. 그는 투자 유치 성공의 요건으로 차별화된 전략과 공무원의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인센티브나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녹차의 고장’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군은 2014년 재정자립도가 6.6%로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16위였다. 재정자립도는 자치단체가 재정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얼마까지 조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것은 지방세, 세외수입 등 벌어들이는 돈이 적어 살림살이가 그만큼 팍팍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난해 보성군은 재정자립도가 9.3%로 껑충 뛰었다. 시군 순위도 다섯 계단이나 올라 11위를 기록했다. 1년 사이에 보성군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 ‘투자 유치 달인’ 사무관

지난해 보성군의 지방재정이 튼실해진 것은 300억 원의 세수입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보성군의 곳간을 채워준 이는 윤영주 전남도 대변인실 홍보지원팀장(53·사무관)이다. 그는 2일 보성군수로부터 지방세수를 크게 늘린 공로로 표창장을 받았다.

1986년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2008년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한 뒤 2013년 전남도 투자총괄팀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 4년간 전남 영암에서 열렸던 포물러원(F1) 코리아그랑프리가 적자가 쌓이면서 중단되자 경주장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때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고향 선배로부터 ‘전국에 렌터카가 55만 대가 있는데 차고지가 대부분 임차료가 비싼 수도권인 데다 포화상태여서 지방으로 옮기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꼼꼼히 살펴보고 무릎을 쳤다. 렌터카를 등록하려면 차고지를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해당 자치단체에 취득세 4%와 1cc당 38원의 자동차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세수 증대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바로 이것이다 싶었다.

“(전남에) 놀리고 있는 땅이 지천이고 공시지가도 수도권에 비해 엄청 싸잖아요. 더구나 렌터카는 차고지 등록만 하고 전국으로 돌아다니니 관리비도 안 들어요. 그야말로 유치만 하면 대박인 거죠.”

그는 대상지부터 물색했다. 1년에 한번 사용하는 축제장의 공터, 폐교 부지, 공설운동장이나 박물관 주차장 등을 전수조사한 뒤 기초자치단체 4곳에 사업을 제안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업무가 생소하다, 절차가 까다롭다, 직원을 늘리고 별도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등 이유를 내세우며 미적거렸다.

“나도 공무원이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어요. 처음 하는 업무니까 힘들기도 하겠지만 렌터카 1대를 등록하면 취득세와 자동차세를 비롯해 차량번호판 제작비용까지 연간 100만 원 세수입이 생기는데 그걸 안 하겠다고 하니….”

2014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새로 선출된 단체장 가운데 투자 유치에 관심을 가진 이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보성군수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는 군수에게 렌터카 업체에 전산 등록 업무를 지원하고 번호판 제작 가격을 할인해주자고 제안했다. 인센티브를 준 덕분에 그해 7월 대기업 렌터카 업체가 전체 보유 차량 5만5000대 가운데 3만7000대의 차고지를 보성군으로 옮겼다.

그전까지 재산세 자동차세 주민세 등 지방세 수입이 한 해 128억 원이었던 보성군은 300억 원의 추가 수입이 생기면서 재정 운용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복원하고 생태공원과 힐링길을 조성하는 사업은 추가 세원이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 일로 공무원들이 투자 유치에 눈을 뜬 것 같아요. 세수입을 올리는 일이 더 없을까 찾아보고 우수 사례 벤치마킹도 열심히 합니다. (제가) 부서를 옮겼는데도 투자 유치를 자문하는 직원도 많아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투자 유치하려면 마음을 사라’

그는 분양이 안돼 어려움을 겪는 지방산업단지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면적이 73만5080m²에 달하는 동함평산단이다. 2014년 말 준공을 6개월 앞두고 있던 동함평산단은 분양률이 30%도 안돼 함평군이 전남도에 ‘SOS’를 요청했다. 그는 접근성이 좋고 분양가도 저렴한 산단의 장점을 살리려면 규제를 풀고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부지를 매입할 경우 분양가의 30% 내에서 최대 3억 원까지 지원하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인센티브를 내걸자 6개월 만에 38개 업체가 입주 계약을 했다. 광주의 타이어 재생업체가 공장을 늘리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빨리 산단 업종을 변경하고 군수 승인을 받아 입주시키기도 했다. 함평군수는 지난해 말 그에게 공로 감사패를 줬다.

2010년부터 2년간 영광군 투자유치과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마산단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례를 만들어 투자유치기금 200억 원을 조성하고 입주 기업에는 1년 동안 산업용 전기요금 최고 2억 원, 5년간 최대 10억 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투자에 필요한 모든 업무는 신속하게 처리해 업체들의 마음을 샀다. 대마산단은 e모빌리티(전기동력기반 운송수단) 클러스터 구축사업을 계기로 친환경산업의 메카로 도약하고 있다.

“투자 유치를 위해선 기업의 어려움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투자가 결정되면 기업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업체를 대신해 각종 인허가 업무를 챙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한마디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 행정 법률이 1500개 정도 되고 이 중에서 개발, 세법, 인허가 등 투자 유치 관련 법률이 44개입니다. 이를 꿰뚫고 있어야 맞춤식 투자 유치가 가능합니다. 최소한 5년 이상 투자 유치 부서에 근무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지난해 7월 도지사 표창 등을 포함해 1년 사이에 4개의 상을 받았다. 이 가운데 하나는 투자 유치와는 무관한 ‘2015 숨은 천사상’이다. 지난해 12월 31일 광주 광산구청장으로부터 받았다. 그가 숨어서 이웃사랑을 실천한 지는 10여 년이 됐다. 6년간 대학 강단에서 행정학 강의를 했고 연간 20여 차례 공무원교육원 등지서 특강을 하는데 월급 외 수입인 강의료를 보람 있게 쓰고 싶었다. 강의료를 받으면 20∼30%를 떼어내 적립했다가 연말에 장애인복지시설에 기탁했다.

“투자 유치 공로는 공무원으로서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지만 기부는 좀 부끄럽네요. 허허.” 호탕한 너털웃음에 나눔의 여유와 훈훈함이 묻어났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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