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학연구원이 대전 유성구 가정로 본원에서 개최하는 전시회 ‘화학과 우주(Chemistry & Cosmos)’에 참여한 길현 작가(사진)는 작업 노트 첫 줄을 이렇게 시작했다. 실제 하얀 캔버스 위에 액체 한 방울을 떨어뜨리자 눈꽃 모양의 그림이 피어났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붉은색, 파란색, 검은색 점이 스르륵 퍼져나갔다.
그는 결과물뿐 아니라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작품으로 간주하는 ‘프로세스 미술’ 분야의 전문가로 10여 년 전 세계 최초로 ‘요소 결정’ 기법을 도입했다. 요소는 인간이 처음으로 합성한 유기화합물이다. 1828년 독일 화학자인 프리드리히 뵐러가 시안산 암모늄의 수용액을 가열해 처음 만들어냈다.
길 작가는 ‘검은 정원(Black Garden)’이라는 작품에서 요소에 검은색 안료를 혼합했다. 요소의 결정 구조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 속에 들어 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눈꽃 모양의 결정체를 형성하는 과학적 원리를 이용했다. 다양한 원색 안료와 혼합하면 무지개처럼 화려한 눈꽃을 만들 수 있다.
그는 “바닷물을 건조시키면 소금 알갱이가 남는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건조가 빨라 결정을 재빠르게 시각화할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여러 가지 화학 재료를 혼합해 보다가 요소를 활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그의 작업실에는 화학 실험실처럼 건조 과정을 실험하는 방이 있다. 재료의 화학적 특성을 활용하는 요소 결정 기법은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그림이 스스로 자라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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