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차가 절반인 테헤란… 수입 빗장 풀려 새차로 뒤덮일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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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재 풀린 이란 현장을 가다]

쇼핑객들로 붐비는 시장



21일(현지 시간) 낮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 중심가의 레자 시장 부근은 쇼핑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방의 대이란 경제 제재 해제 이후 이란 국민들은 앞으로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쇼핑객들로 붐비는 시장 21일(현지 시간) 낮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 중심가의 레자 시장 부근은 쇼핑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방의 대이란 경제 제재 해제 이후 이란 국민들은 앞으로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최대 시장인 그랜드바자르. 수천 년 역사의 그랜드바자르는 중동 최대 시장 중 하나로 이란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펫, 귀금속, 향신료, 견과류, 의류 등 거의 모든 물품을 취급하는 가게들로 빼곡하다. 시장 통로를 모두 이으면 10km를 웃돈다. 이곳에서 만난 테헤란 시민들은 37년 만에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가 풀리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의류 상인 하산 씨(45)는 “경제 제재가 해소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비와 투자 심리에는 큰 영향을 끼친다”며 “그동안 돈을 꽤나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젠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앞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란을 많이 찾게 되면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중국과 이란이 합작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알리 소브하니 씨(36)는 이날 기자와 만나 “중국과 한국은 서방의 경제 제재 당시에도 건설, 전자업체 등이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이란과 경제 교류를 해왔다”며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이 이란의 인프라 건설에 많은 투자를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큰 게 사실이지만 이란 당국은 제재 해제를 계기로 외부 세력이 이란에 침투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란이 서방과 핵 협상을 타결한 이후 분위기가 좋아져 외국인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이란 당국이 이를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 이란에서는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의 다국적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그동안 서방 국가에서 금융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비자, 마스터 등의 국제 신용카드는 현지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현지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미국 달러, 유로화 등을 가져가 현지 은행, 환전소 등에서 이란 리알화로 바꿔야 한다.

유가 하락의 여파로 리알화는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7월 핵협상이 타결됐을 때만 해도 달러당 3만3000리알 안팎이었던 리알화의 가치는 21일 현재 달러당 3만6000리알로 떨어졌다. 물가도 핵협상 타결 이후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상당히 떨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가해진 2013년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40%를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질레트 면도날 1상자의 가격은 4년 전과 비교할 때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랜드바자르의 한 수공예품 가게 판매원은 “이란인들은 우리 제품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다르다. 그들은 우리 제품에 관심이 많다. 경제 제재가 풀렸으니 가게 매출이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국내 소비시장은 양극화 현상이 매우 뚜렷하다. 국민 대부분은 소득의 70%를 식비와 주거 임차료에 사용한다. 소비품은 대체로 저가인 중국산과 대만산, 터키산을 선호한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은 LG, 애플 등 고급 전자제품이나 승용차를 구입하려고 한다. 테헤란 거리에는 낡은 중고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고 다녔으나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많이 보였다. 부유층은 서방 국가의 상류층 이상이다. 명품 브랜드와 최고급 제품을 선호한다. 테헤란 거리에서도 벤츠, BMW 등의 자동차가 간혹 눈에 띈다.

그 대신 대다수 제품의 공급량이 크게 부족한 탓에 시장 자체는 공급자가 좌우하는 구조다. 현지 기업들은 물량을 상당 부분 확보해도 한꺼번에 유통하기보다 시장 현황을 보면서 유통 물량과 가격을 조절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국산품을 장려하기 위해 생산량이 적어도 자국 제품이 있으면 높은 관세, 수입제한 조치 등을 실시하고 있다.

‘테헤란의 청담동’이라고 할 만한 북부 부촌에 자리한 ‘팔라디움몰’은 명품가게, 고급 음식점, 수영장, 피트니스클럽 등이 입주한 고급 쇼핑몰이다. 몽블랑, 스와로브스키, 훌라, 나이키 등 해외 유명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팔라디움몰에는 빈 공간이 꽤 많았으나 현재는 거의 모든 공간이 채워졌다. 가잘레 파티 씨(35)는 “팔라디움몰은 유럽의 여느 쇼핑몰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수입품에 관세를 높게 매겨 외국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명품 가게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서구식 옷차림을 한 여성으로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려고 쓰는 스카프)을 머리 뒷부분에 살짝 걸친 채 스마트폰을 들고 쇼핑을 하고 있었다. 1979년 2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전만 해도 이란 여성들은 서구식 옷차림을 하고 히잡을 쓰지 않았다. 패션의 자유를 누려서 가슴과 허벅지의 일부를 드러낸 옷을 입기도 했다. 과거 이란 왕정은 여성을 덴마크 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에르위나 알라스 씨(27·여)는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 경제가 상당 부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여성에게도 과거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팔라디움몰 밖으로 나가자 고가 시계인 오메가의 광고 간판도 보였다. 인근에선 명품 전문 쇼핑몰이 2곳이나 건물을 짓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 쇼핑몰에선 완공 전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에서 식료품 판매점이 운영되고 있었다. 가게 직원은 “유럽 고급 식재료와 가공식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란#테헤란#경제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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