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아랍의 봄을 찾아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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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팀 매킨토시-스미스 지음/신해경 옮김/544쪽·2만2000원·봄날의책
이븐 바투타가 14세기에 쓴 여행기에 매료된 영국인 저자
발자취 따라 이슬람 지역 여행
여전히 순수한 사람들 사이로 평화 사라져가는 아랍의 현실 그려

터키 이스탄불의 대표적 건축물인 아야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이 동로마제국의 수도일 때 대성당으로 지어졌지만 이슬람 지배 후 모스크로 쓰였다. 저자는 그리스도 벽화와 ‘알라’라는 아랍 문자가 공존하는 광경을 보며 두 종교가 함께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봄날의책 제공
터키 이스탄불의 대표적 건축물인 아야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이 동로마제국의 수도일 때 대성당으로 지어졌지만 이슬람 지배 후 모스크로 쓰였다. 저자는 그리스도 벽화와 ‘알라’라는 아랍 문자가 공존하는 광경을 보며 두 종교가 함께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봄날의책 제공
무언가에 홀린 듯 어디론가 떠나본 적이 있는가. 성공회 신자이자 스스로를 아마추어 역사지리학자라고 말하는 영국인 저자는 14세기에 쓰인 이븐 바투타(1304∼1368)의 ‘여행기’에 매료돼 그 발자취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아랍의 유명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는 1325년 고국 모로코를 떠나 이집트 시리아 오만 터키를 거쳐 탄자니아 인도 중국 등을 29년간 누빈 뒤 ‘여행기’를 썼다. 오로지 두 발과 말, 노새, 뗏목에 의지한 이바(이븐 바투타의 애칭)의 여정은 40여 개국 12만 km에 이른다. 마르코 폴로가 탐험했다고 주장하는 거리의 세 배다. 이바는 해적을 만나고 배가 난파해 가까스로 탈출하는가 하면 설익은 얌(마의 일종)을 먹고 죽을 뻔하기도 했다. 저자는 ‘여행기’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다 읽으면 어쩌나 걱정할 정도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 책은 이바의 여정 중 이슬람 지역을 저자가 주유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바가 하루 묵었던 수도원을 찾아 헤매고 그가 걸었던 거리, 모스크, 병원까지 샅샅이 뒤진다. 수도원은 잔해만 발견하고 병원은 쇠락해 있다. 이바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기에 14세기와 21세기 아랍의 모습이 정교하게 교차된다. 아랍의 풍속, 정서, 먹을거리, 거리풍경 등이 날것 그대로 세밀화처럼 펼쳐진다.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바를 반겼던 이들처럼 안전한 여행을 기도하며 등을 두드려주는 모로코 남성을 만난다. 프랑스 여성과 사랑에 빠진 시리아 호텔 직원은 연애편지를 번역해 달라고 부탁한다. 700년 역사를 지닌 이집트 카이로 병원의 원장은 “꾸란의 구절 ‘너희는 약간의 지식을 얻었을 뿐이다’를 기억하려 애쓴다”고 겸허히 말한다.

2001년 출간돼 이번에 한국에 소개된 이 책은 평화로부터 멀어져 가는 아랍의 현실을 또렷이 부각시킨다. 14세기, 왕들은 전쟁 대신 아들딸을 결혼시키며 평화를 유지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바가 그처럼 넓은 지역을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평화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기 전 여행했던 저자는 시리아 이집트 터키를 누볐다. 이때도 룩소르에서 과격단체가 외국인 관광객 60명과 이집트인 8명을 죽이는 등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었다.

지금 여행의 인프라는 발달했지만 국경의 장벽은 더 높아지고 있다. 시리아는 갈 수 없는 곳이 됐고, 이집트와 터키는 폭탄 테러로 얼룩지고 있다. 예멘에 살고 있는 저자는 말한다. “이븐 바투타의 시대, 여행은 느렸지만 국경은 열려 있었습니다. 아마 사람들의 마음도 그랬겠죠.”

500쪽이 넘는 글을 꼼꼼하게 파악하려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전설과 역사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하고 문학 음악 등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하는 데다 때로 저자의 상상이 더해져 내용이 쉽게 입력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여행기로 여기고 책을 펼친다면 당황할 수 있다. 거친 코스와 빡빡한 일정을 내밀고는 자신 있으면 한번 따라와 보라며 씩 웃는 괴짜 여행 안내자를 만난 기분이다. 우리에게 낯선 아랍의 학자와 사상가, 술탄 등을 비롯해 음식, 옷, 지역을 상세히 설명한 각주를 책 뒤에 몰아넣어 읽는 흐름을 자주 끊기게 만든 점은 아쉽다.

여행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사진 대신 삽화를 넣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자의 여정은 BBC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원제는 ‘Travels with a tangerin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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