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걸려 도착한 희망의 땅… 독일어 배워 새 삶 시작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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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템펠호프 난민수용소 르포]<상>

베를린=이유종 기자
베를린=이유종 기자
7일 오후 6시 독일 베를린 남부에 있는 한 허름한 공항 격납고.

옛 동독 시절인 1923년 문을 열었던 이 국제공항의 옛 이름은 ‘템펠호프 공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를린을 방어하는 독일 공군의 본거지 역할을 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공산주의에 맞서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또 독일 분단 후인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했을 때는 미국 주도의 서방 연합군이 서베를린 시민을 위해 수십만 t의 식량과 연료를 수송한 ‘베를린 공수작전’의 중심지였다.

통독 후인 2008년 10월 베를린 시는 남동부에 새 공항을 준비하면서 템펠호프 공항을 폐쇄하고 공원으로 바꿔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던 이곳이 최근에는 난민수용소로 변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36개 국가에서 유입된 난민 2200명이 옛 비행기 격납고였던 3곳에 천막, 대형 칸막이를 치고 생활하고 있다. 베를린 시는 갑작스럽게 넘친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이곳 외에도 옛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본부 건물, 대형 전시장 ‘메세 베를린’, 고교 체육관 등을 수용소로 쓰고 있었다.

이 중 먼저 찾은 곳은 템펠호프 시민공원. 옛 격납고가 있던 건물 앞에서는 보안요원 4명이 삼엄하게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었다. 난민 신분증을 제시해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독일 정부는 민간 난민전문 관리업체 ‘타마자’에 템펠호프 공항 난민수용소의 운영을 위탁하고 있었다. 난민 관리업체 직원 45명이 난민수용소 운영을 책임지고, 케이터링 업체 직원 50명이 난민들의 식사를 맡고 있었다.

보안요원 76명은 크고 작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 항상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진도 24시간 대기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격납고 3곳 중 한 곳에는 대형 천막 75동이 놓여 있었다. 나머지 2곳에는 대형 칸막이가 세워졌다. 천막 안에는 2층 침대가 배치됐고 모두 12명이 함께 지냈다. 텐트는 독일연방군에서 설치했다고 한다. 베를린 시는 수용소가 만들어진 지 한 달여가 지난 7일 현재 난민 1명당 생활비로 1인당 109유로(약 14만 원)를 지급했다.

난민들을 위한 별도 샤워시설이 있었지만 수용소 전체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등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 한눈에 봐도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밝고 희망이 넘쳤다. 위험한 조국을 목숨 걸고 탈출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독일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펼쳐질 새 삶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시리아 출신 대학생이라는 아마르 사이드(20)는 “레바논,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등 무려 10개국을 거쳐 한 달 만에 가까스로 독일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며 “지금 독일어를 배우고 있는데 이곳에서 반드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주변에 아랍계 난민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갑자기 기자에게 ‘출입 통제가 너무 심하다’는 등 각종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서자 이동 화장실과 샤워실이 보였다. 다른 수용 공간 2곳에는 성인 남자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커다란 칸막이가 설치돼 있었다. 천막처럼 역시 2층 침대를 배치하고 10명 안팎의 난민이 함께 잠을 잔다. 천막엔 난민 가족들이 입주했고 칸막이는 혼자 들어온 사람들이 차지했다. 난민들 사이에선 간혹 불협화음도 발생한다. 지난달 29일 난민들끼리 흉기를 동원한 패싸움을 벌여 수십 명이 다치고 24명이 체포됐다.

두 번째 방문지인 베를린 서부에 있는 ‘메세 베를린’을 찾은 것은 이튿날인 8일 오전 10시. 이곳은 본래 각종 박람회와 전시회 등이 열리는 대형 전시장이었다. 이곳 26동 등 3곳에 2000명 정도가 수용된 난민수용소가 마련돼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기다란 탁자와 의자가 보였다. 식당으로 쓰이는 곳이었다. 배식 시간이 아니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난민들은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오른팔에는 파란색 띠가 채워져 있었다. 혼자 유럽으로 들어온 난민들에게 채워진 표시물이었다. 어제 들렀던 템펠호프 난민수용소에서 배식 줄을 서던 난민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는 소식에 돌출 행동을 하는 난민들을 적발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라크에서 아내와 자녀 4명을 데리고 탈출했다는 나자르 알마미(39)는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그는 “폭격으로 큰아이가 다리를 크게 다쳤다”며 “독일 땅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다 해도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독일에 체류 중인 난민 100만 명 중 70% 이상이 선진국 독일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등진 젊은 남성들로 집계된다. 난민들은 1951년 7월 체결된 제네바 조약에 따라 난민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한다. 지위를 인정받으면 독일에 체류할 수 있고 합법적으로 취업해 돈을 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타울라 크넨잔(18)은 친구들에게 8000달러(약 940만 원)를 빌려 난민 브로커에게 주고 부모와 형제를 남겨둔 채 독일로 들어온 경우다. 그는 “좁은 보트를 타는 등 큰 위험을 감수했지만 독일에서의 새로운 삶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베를린=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독일#템펠호프#난민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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