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낼 주체도 불분명한 1兆… “결국 또 기업 등떠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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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FTA 국회 비준]‘年1000억 상생기금’ 이중과세 논란

정부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총 3조800억 원의 보완대책을 마련했다. 올해 6월 농어업 분야에 4800억 원을 지원하는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30일에 추가로 2조6000억 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핵심은 1조 원으로 조성되는 농어민지원기금이다. 하지만 한중 FTA로 누가 얼마나 혜택을 보는지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런 이유로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 1조 기금은 포퓰리즘…수출에 큰 메리트 없어

여야정협의체가 이날 제시한 상생기금 조성은 야당이 ‘한중 FTA로 혜택을 보는 산업 부문의 이윤 일부를 강제로 떼어내 피해를 보는 농어촌에 지원하자’고 주장했던 무역이득공유제의 대안이었다. 한중 FTA 체결로 혜택을 보는 민간기업, 공기업, 농협 및 수협 등이 ‘자발적’으로 매년 1000억 원, 10년간 1조 원의 기부금을 마련하면 농어업 지원사업에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농어업 전문가를 영입해 별도의 본부를 꾸려 기금을 운영하기로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 총 42개 경제단체 및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FTA민간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일단 “환영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계의 속내는 많이 다르다. 향후 기금 조성 및 집행 과정에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기부금에 대한 7% 세액공제, 동반성장지수 가점 부여 등 강력한 인센티브를 줘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산업계에선 이 기금에 돈을 내는 것을 준조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돈을 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수익이 늘면 자연스레 법인세가 증가하게 되는데 또다시 준조세 성격의 기부금을 내면 이는 명백한 이중과세”라며 “앞으로 FTA를 체결할 때마다 기업 부담을 키우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는 합의문에서 ‘자발적 기금조성액이 연간 목표에 미달할 경우 정부는 그 부족분을 충당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한다’고 규정해 예산 투입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한중 FTA 개방도는 한미나 한-EU FTA보다 훨씬 낮은데도 정부와 국회는 앞선 FTA와 달리 1조 원의 기부금을 조성해 농업 부문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다”며 “기업들이 FTA로 가격을 낮출 유인이 없어지게 돼 수출에 큰 메리트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근시안적 대책” 비판 커

정부와 국회는 기금 조성 외에 금리 인하와 세제 지원을 통해 10년간 총 1조6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 농업 분야의 피해보전직불제의 보전비율을 현재 90%에서 내년부터 95%로 인상하기로 했다. 수산물 직불금의 경우 2017년부터 4년간 매년 5만 원씩 단계적으로 인상해 2020년에는 어촌 가구당 7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 밖에 어업 소득에 대한 비과세를 확대하는 등 금융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농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 당장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근시안적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통해 쌀 시장을 개방한 이후 지난 20년간 200조 원이 넘는 농가 보조금을 지원해왔지만 농업 경쟁력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 결과 농가 소득은 10년째 3000만 원 선에 머물고 있다.

농민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김진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산 농산물로 10조 원 이상 피해를 봤고 FTA가 시행되면 더 큰 피해가 예상되는데 1조 원을 가지고 보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김창덕·김성모 기자
#기업#한중fta#이중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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