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전철을 타려는데 지갑을 깜박 잊어버리고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장인 A 씨. 그는 여유 있게 역사 내 은행 자동화기기를 찾아 은행 체크카드 대신 손바닥을 갖다댔다. 센서가 그의 손바닥 내 정맥을 인식했고 미리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바로 원하는 금융거래를 선택하라는 화면이 떴다. 간편하게 돈을 찾은 그는 이 현금으로 출근길 전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비대면(非對面) 실명확인’ 제도가 다음 달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손바닥이나 지문, 홍채 등 다양한 생체정보로 본인임을 인증하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생체정보를 통한 인증은 간편할 뿐만 아니라 분실 우려가 없어 차세대 본인 인증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은 12월∼내년 1월 생체인증 시범서비스를 도입해 고객들의 반응을 살필 계획이다.
○ 눈 깜박이며 돈 찾고, 손바닥으로 송금
금융권에 생체인증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정부가 창구 직원에게 본인 확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비대면 인증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5월 ‘금융거래 시 실명확인 합리화방안’을 내놓고 다음 달부터 은행 창구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신분증 사본 제출 △기존 계좌 활용 △영상통화 △현금카드 신용카드 등 전달 시 본인 확인 등의 방식 가운데 2가지 이상을 활용해 실명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금융당국은 이외에도 금융회사가 본인 인증 방법을 추가로 개발할 것을 적극 권장해왔으며 금융회사들은 핀테크 기업들과 공동으로 새로운 인증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생체인증 서비스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누가 더 빠르고, 혁신적인 인증방식을 내놓느냐에 따라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홍채 인식을 선택해 내년 1월 홍채 인식 센서를 부착한 자동화기기를 보급해 시범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분증 사본 등 다른 인증수단으로 본인 인증을 하고 홍채를 한 번 등록하면 이후에는 홍채만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기업은행도 내년 홍채를 통한 본인 인증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문 인증 방식을 선택했다. 12월 모바일뱅크 ‘원큐뱅크’를 선보일 예정인 KEB하나은행은 이른 시일 안에 지문인증을 통해 금융거래가 가능한 자동화기기를 선보일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12월부터 손바닥 정맥으로 본인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키오스크(무인자동화기기)’에 손바닥을 대면 센서가 정맥의 패턴을 읽어내고 본인 인증이 이뤄지면 간단한 출금, 송금 등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생체인증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생체인증 서비스를 당장 도입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인증 방식에 거부감을 보일 수 있어 고민”이라며 “일단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는 여전
실제로 일부 소비자 사이에는 생체인증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다. 개인 고유의 생체정보가 유출될 경우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처럼 바꿀 수도 없어 영구적인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객들의 불안을 고려해 금융결제원과 시중은행들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생체정보를 안전하게 처리할 ‘분산관리 표준 기술규격’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생체정보를 금융회사와 결제원 등에 쪼개서 보관하면 해킹 공격 등을 받더라도 생체정보가 통째로 유출돼 피해를 보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김종현 선임연구위원은 “개인의 생체정보가 유출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본격적인 생체인증 기술 도입에 앞서 생체정보 보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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