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엑소더스… 신흥국, 빚의 악순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2016년 세계경제 최대 리스크

이달 19, 20일 영국 런던 본사에서 열린 슈로더자산운용의 연례 미디어 콘퍼런스. ‘2016년 투자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의 핵심 주제는 사실상 ‘향후 신흥국 경제의 향방’이었다. 키스 웨이드 슈로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자리에서 중국 등 신흥국의 경기 부진을 우려하면서 내년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9%에서 2.5%로 끌어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각국에서 온 금융담당 외신기자의 80%가 내년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협을 묻는 질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시장 불안’과 ‘중국의 경착륙 우려’를 꼽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은 미국과 유럽의 경기 둔화를 만회하는 세계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7년이 지난 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은 풀었던 돈줄을 서서히 죄며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과도한 부채와 자본 이탈로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가 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 부채에 허덕이는 신흥국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 확실시되면서 신흥국으로 유입된 선진국 자금의 유출이 뚜렷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이달 5일부터 18일까지 글로벌 주식형 펀드의 유출입 내용을 분석한 결과 선진국에 투자하는 펀드에는 65억600만 달러(약 7조5469억 원)가 순유입된 반면 신흥국 펀드에서는 47억2700만 달러(약 5조4833억 원)가 빠져나갔다.

신흥국 중에서도 향후 경기 둔화가 우려되는 중국 시장에서의 자금 유출이 두드러진다. 올해 들어 이달 11일까지 중국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276억2800만 달러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에는 646억4100만 달러, 독일(296억8300만 달러)과 프랑스(240억3000만 달러) 등 유로존에는 1396억900만 달러가 순유입됐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추가로 양적 완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 유로존과 일본으로는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신흥국에서는 2013년 5월 이후 꾸준히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대거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최근 10년간 신흥국의 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2004년 4조 달러였던 신흥국의 기업 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18조 달러(약 2경862조 원)로 급증했다. 신흥국의 자본 유출 속도가 빨라지면 신흥국 기업들이 ‘돈맥 경화’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크레이그 보섬 슈로더 이머징마켓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들은 아직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특히 최근까지 저금리로 신흥시장에 값싼 달러가 많이 유입됐기 때문에 이들 국가의 기업부채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쓰쓰얍 아시아담당 주식상품 매니저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지난 15년 동안 두 배 이상으로 급등했고, 기업의 현금흐름이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이후 원자재 가격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신흥국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급락하면서 자원 수출국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재정과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고 통화 약세로 인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브라질과 러시아는 이미 국가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상태다.

○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한국은 아직 ‘상황이 나은 신흥국’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신흥국발 위기가 본격화되면 금융시장의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증시에서도 하반기(7∼12월) 들어 외국인들의 순매도 강도가 커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만 외국인들은 주식에서 8조 원, 채권 시장에서 4조 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코스피시장에서 8월 12일 이후 최근까지 5조8212억 원이 빠져나갔고 11월 5일부터 20일까지 15일 동안에만 1조2267억 원이 순유출됐다.


▼ 신흥국 경기 둔화땐 한국 수출에 큰 부담 ▼

외국자본 엑소더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초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미국의 금리 인상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시에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 둔화가 맞물려 신흥국에서의 자본 유출 강도가 예상보다 강해질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중국 경제와 연계성이 높은 아시아 신흥국과 자원수출국의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면 수출 둔화로 인한 실물경제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한국의 신흥국에 대한 수출 비중은 56%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한국은행은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우리나라도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 중국의 최종재 수요 감소, 아시아 신흥국의 경기 둔화 등으로 수출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흥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시장 환율 기준으로 39.2%, 구매력 기준 57.1% 수준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신흥국의 성장 정체는 한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만큼 내수 성장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신수정 crystal@donga.com / 런던=유재동 기자
#외국자본#엑소더스#신흥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