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세형]첫 메르스 보고서, 영어로 슬쩍 낸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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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정책사회부
이세형·정책사회부
지난달 5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하는 영문 학술지인 ‘오송 공공보건과 전망(Osong Public Health and Rsearch Perspectives)’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된 첫 번째 역학 보고서(2015 한국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보고서)가 실렸다.

이 보고서에는 메르스 감염자들을 토대로 분석한 △사망률 △바이러스 잠복기 △슈퍼 전파자 특성 △호흡기 환자 관리 미비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영문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해외에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보건당국은 설명한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두고 보건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식으로 공개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보고서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나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정부가 메르스 실태를 알리는 데 여전히 소극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메르스 발생 초기부터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했거나, 정부 자문회의에 참석했던 전문가 중에서도 보고서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이들이 많다.

메르스 환자들을 직간접으로 치료했던 한 대형병원 의사는 “26일 언론 보도를 접하기 전까지는 정부가 역학 보고서를, 그것도 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작성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의 메르스 관련 자문회의에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메르스 사태가 불러왔던 파장과 국민적 관심사를 고려할 때 전문가들에게도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건 이해가 안 된다”며 “결국 정부는 ‘메르스와 관련된 건 최대한 숨긴다’는 방침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매일 수많은 메르스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5∼6월 같은 위기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80번 환자가 다시 메르스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이며 공식 종료 시점이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아직 환자 4명이 메르스 후유증으로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와 관련된 정보라면 작은 것이라도 일반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닐까.

정부는 메르스 발생 초기 방역에 실패했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국민 불안을 키운 바 있다. 이런 뼈아픈 실수를 교훈 삼아 지금부터라도 메르스와 관련된 정보는 적극 공개해야 한다. 정부의 첫 번째 역학 보고서의 존재를 국민이 뒤늦게 아는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이세형·정책사회부 turtle@donga.com
#메르스#보고서#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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