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울리는 ‘속빈 자격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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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자격증 1만7000개 우후죽순… “취직 보장” 내세워 수강생 유혹
최악 취업난 틈탄 ‘證 장사’ 많아… 기업선 “직무 무관땐 가산점 없어”

성준호(가명·28) 씨는 대기업 수십 곳에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매번 1차 전형에서 탈락했다. 부족한 ‘스펙’ 탓으로 여긴 성 씨는 2년 전부터 각종 민간자격증을 따는 데 몰두해 왔다. 지방대 출신인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자격증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가 획득한 자격증은 인성지도사, 소비자전문상담사, 레크리에이션 지도사, 독서논술지도사 2급 등 4개. 학원 수강비, 교재비 등으로만 250만 원가량을 썼다.

성 씨는 올 상반기 한 대기업의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고생해서 취득한 자격증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 본 면접시험에서 그는 뒤통수를 맞았다. 면접관이 “직무와 관계없는 자격증을 따는 데 시간만 낭비했다”는 핀잔을 줬기 때문이다. 성 씨는 “이력서를 조금이라도 더 채우고 싶은 마음에 여러 자격증을 땄지만 결국 돈만 낭비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취업 장벽을 뚫기 위해 각종 자격증을 따려는 청년, 경력단절여성(경단녀) 등의 구직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절박한 마음을 이용한 ‘자격증 장사꾼’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도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19일 현재 정부에 등록된 민간자격증은 무려 1만7289종에 이른다. 2007년 자격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정부가 민간자격 등록제를 도입한 뒤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민간자격증은 운전면허 등과 달리 특별한 심사과정 없이도 등록이 허용되다 보니 급속하게 늘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 경단녀 구직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취업난 속에서 ‘스펙’을 조금이라도 더 쌓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구직자들을 자격증 학원으로 몰고 있는 것. 유사 자격증도 난립하고 있다. 한 곳이 인기를 얻으면 다른 곳에서 바로 비슷한 교육과정을 급조해 등록하는 식이다. 심리상담 관련 민간자격증은 1460종, 웃음 관련 자격증은 196종이나 된다. ‘취업 100% 보장’ 같은 허위 과장 광고도 늘어나는 추세다.

박창규 kyu@donga.com·김재형 기자
#구직자#자격증#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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