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극같은 왕의 맨얼굴 여과없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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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장으로 입을 쳐라” “어느 곳을 지져야 하는가”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하는 데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관리들을 국문하는 장면(위쪽 사진).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인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놀랍도록 상세하게 담고 있다. KBS TV 화면 캡처·고전번역원 제공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하는 데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관리들을 국문하는 장면(위쪽 사진).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인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놀랍도록 상세하게 담고 있다. KBS TV 화면 캡처·고전번역원 제공
조선시대 어전 속기록 ‘승정원일기’

“장(杖·곤장)으로 입을 치라.” “네가 더욱 독기를 부리는구나, 매우 쳐라! 매우.” “어느 곳을 지져야 되는가?”

‘막장 사극’의 대사일 듯하지만 이는 조선 숙종이 실제로 했던 말이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하는 데 반대 상소를 올린 전 파주 목사 박태보를 밤새 국문하면서 가혹한 고문을 하라는 명을 직접 내렸다. 숙종의 국문은 숙종실록 15년(1689년) 4월 25일 자에 등장한다.

3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당시 상황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는 것은 조선의 기록문화 덕분이다. 실록과 함께 특히 국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이 왕명을 출납하며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가 압권이다. 불행하게도 숙종 시기의 이 기록은 화재 등으로 사라졌다. 승정원일기는 현재 인조∼순종 동안의 기록만 남아 있지만 2억4250만 자에 이른다.

○ 정승 10명 중 9명은 승정원 출신

승정원 관리는 지근거리에서 왕을 보좌하는 만큼 출세의 엘리트 코스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승정원일기를 번역하고 있는 한국고전번역원이 경국대전에 근거해 관직이 운영된 조선 세조∼철종 시기를 분석한 결과 영의정 등 3정승을 지낸 298명 중 249명이 승정원 승지를 지냈고, 20명은 일종의 속기사인 주서(注書·정7품) 출신이었다.

왕과 신하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기록하는 주서는 문관 중 ‘웅문속필(雄文速筆·문장이 빼어나고 글을 빨리 씀)’한 사람을 뽑았다. 그러나 즉석에서 한문으로 번역해야 하다 보니 이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이때 주상(숙종)이 매우 노하여 말이 빨랐고 대부분 상스러운 말로 하교했다. 그래서 사관들이 그 말을 글로 빨리 옮겨 쓰지 못하고 붓놀림이 지체됐다. 공(박태보)이 이를 보고 ‘몸을 꽁꽁(必자 모양으로) 묶고 무우석(無隅石·뭉우리돌)으로 입을 쳐라’라고 쓰지 못하고 지체하느냐며 혀를 차고 꾸짖었다.”(박태보 문집 ‘정재집’ 중에서)

고문을 받던 박태보가 숙종의 ‘꽁꽁’ ‘뭉우리돌’이라는 말을 한문으로 옮기기 힘들어하는 사관에게 이를 어떻게 쓸지 알려줬다는 것이다.

○ 왕명을 거부하거나 이의 제기도

승정원일기는 국왕의 사후에 각종 사료를 모아 편찬되는 실록과 달리 현장에서 작성된 뒤 매달 1책씩 편찬됐기에 사관의 당파 등에 따라 사실이 달라질 여지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영조 4년(1728년) 이인좌의 난을 수습한 것에 대해 실록은 “신하들이 모두 김일경(소론 강경파)과 박필몽(이인좌의 난의 주모자)의 구당(舊黨)이었으나 팔도의 적이 차례로 그 목을 바쳤으니 (…) 영조의 대략에 힘입은 것으로 훌륭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난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던 영조 4년 3월 14일 승정원일기에는 영조가 도성 경비 강화 등을 두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침착하게 대응한 것은 당시 영의정 이광좌(1674∼1740)였다.

정만조 국민대 명예교수는 “이광좌가 난의 주모자들과 같은 소론이었기 때문에 노론 정권 당시 편찬된 실록은 그가 역모와 연관돼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다”며 “그러나 승정원일기는 당시 상황을 사실 그대로 기술했다”고 말했다.

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승정원은 부당하다고 여기는 왕명 출납을 거부하는 ‘작환((격,교)還)’과 이의를 제기하는 ‘복역(覆逆)’ 전통이 있어 왕이 이들 몰래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정조도 역모에 연관됐다고 몰린 동생 은언군을 보호하기 위해 승정원을 거치지 않고 내관들을 통해 밀명을 자주 내렸다.

1994년 번역이 시작된 승정원일기는 현재 40여 명의 인력이 투입돼 있지만 양이 방대해 번역률이 16.9%에 머무르고 있다. 고전번역원 관계자는 “이 속도라면 완역에 48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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