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대타협 선언]유럽과 달리 선제적 위기대응… ‘노사 윈윈 모델’ 만들 기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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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노동개혁 첫발]<上>선진국 개혁사례를 넘어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위원회를 열고 노동시장 개혁 노사정(勞使政)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의결 직후 노사정 4자 대표가 손을 나눠 잡았다. 왼쪽부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위원회를 열고 노동시장 개혁 노사정(勞使政)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의결 직후 노사정 4자 대표가 손을 나눠 잡았다. 왼쪽부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601만 명(8월 말 현재 정부 집계)에 이르는 비정규직, 10%를 넘나드는 청년실업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긴 근로시간(연평균 2163시간). 한국이 1998년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으로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이후 받은 성적표다.

특히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60세’에 따른 ‘청년 고용절벽’이라는 위기에도 직면해 있다. 1998년 대타협과 네덜란드, 독일의 노동개혁이 ‘과거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면 이번 대타협은 ‘미래의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최초의 협약이라는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은 노사정이 약속한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정착시켜 나가는 한편 선진국 노동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교훈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용유연성 확보와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이런 의미를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선진국 노동개혁의 교훈


정부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지난해 9월 노동개혁 논의에 착수하면서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1982년 체결)을 모델로 꼽았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초 30%를 웃도는 청년실업률에도 높은 임금 인상률 때문에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기피하는 등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당시 뤼돌퓌스 뤼버르스 총리는 노동계를 설득해 △임금인상 자제 △근로시간 단축 △사회보장제도 축소 등 78개에 이르는 협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50%대에 불과하던 고용률은 협약 이후 75%까지 증가했고 근로시간이 줄면서 일자리는 크게 늘어났다.

물론 노동계의 반발도 거셌다. 정부가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금 동결을 합법화하자 노동계는 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고임금 노조의 파업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당시 빌럼 콕 노총 위원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노동계를 설득하고, 대타협을 이끌어낸 뒤 재무장관을 거쳐 총리(1994∼2002년)까지 지냈다.

독일은 2002년부터 추진한 ‘하르츠 개혁’을 좌파 정권(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이 먼저 추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후 기민당(앙겔라 메르켈 총리)으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개혁은 중단되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노동개혁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독일은 전문가 위원회 모델을 도입했다. 폴크스바겐 인사담당 이사로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페터 하르츠가 노사 및 공익 전문가 15명과 협의해 개혁안을 도출했고, 정부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강력히 추진했던 것. 그 결과 고용률은 70%를 넘었고 청년실업률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노동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와 노총 지도부의 리더십”이라며 “정부가 야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그리고 김동만 위원장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가 노동개혁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두 마리 토끼 쫓는 한국형 노동개혁

네덜란드와 독일의 노동개혁은 모두 극심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종 수단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질 낮은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축소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양상이 좀 다르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도 15일 “지금은 급박한 경제위기 상황이 아닌 상시적 저강도 위기”라고 말했다. 심각한 경제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미래의 위기에 대응하는 선제적인 노동개혁을, 그것도 대타협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합의안에는 △원·하청 구조 개선 △실업급여 확대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사회안전망을 늘리는 내용이 대폭 담겨 있다. 고용유연성을 더 확보했던 네덜란드, 독일과는 달리 고용유연성과 사회안전망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 만약 성공한다면 전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이 되지만 실패한다면 노동시장의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야당이 반대하고, 민주노총이 빠져 있는 ‘반쪽 타협’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개혁의 필수 과정인 합의안의 이행과 법제화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대타협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야당, 노동계와 끊임없는 ‘소(小)타협’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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