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에밀레∼’ 영혼을 깨우는 그윽한 종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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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의 매력과 비밀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통일신라·771년 제작)이 있습니다. 높이 3.75m, 아래쪽의 입구 지름 2.27m, 무게 18.9t으로, 우리나라 전통종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답습니다. 처음엔 경주 봉덕사에 설치했지만 몇 차례의 이전을 거쳐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지요.

에밀레종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종은 그윽한 종소리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신비롭게 자리 잡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종을 치지 않습니다. 경주박물관에 가면 녹음된 종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빼어난 조형미, 신비로운 종소리에 힘입어 한국 전통종의 백미로 꼽히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771년).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빼어난 조형미, 신비로운 종소리에 힘입어 한국 전통종의 백미로 꼽히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771년).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한국 전통종의 백미

불교에서는 종소리를 부처의 진리의 소리에 비유합니다. 사람들의 혼탁한 영혼을 깨우는 소리,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부처의 설법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옥의 중생도 사찰의 종소리를 들으면 모두 깨어나 극락으로 간다”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한국 전통종의 전형(典型)이자 백미(白眉)로 평가받습니다. 전체적으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합니다. 몸체 중앙에 장식한 비천상(飛天像·하늘을 나는 신선의 모습)이 특히 매력적이지요.

성덕대왕신종의 또 다른 매력은 깊고 그윽하며 여운이 오래가는 종소리입니다. 그럼, 성덕대왕신종 종소리의 신비로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그 비밀을 밝혀내고자 도전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볼 때, 비밀의 핵심은 맥놀이 현상의 극대화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맥놀이는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 맥놀이가 길게 이어질수록 종소리는 여운이 오래 남고 그윽해집니다.

성덕대왕신종은 불국토(佛國土)를 구현하고자 하는 신라인들의 불심의 표현입니다. 또한 성덕왕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신라의 평화와 번영, 신라인들의 안녕을 갈망하는 마음도 담겨 있지요. 무릎을 꿇고 향로를 든 채 공양하고 있는 비천상은 바로 성덕왕의 명복을 빌고 있는 겁니다.

성덕대왕신종 몸체에 장식된 비천상.
성덕대왕신종 몸체에 장식된 비천상.
○종을 치지 않는 까닭

안타깝게도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지금은 직접 들을 수 없습니다. 2004년부터 타종을 중단했기 때문이지요. 타종을 할 경우, 종에 충격을 주어 자칫 심각한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제작된 지 13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다 보니 종은 점점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강원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725년 제작) 역시 오랜 타종으로 인해 균열이 생겨 타종을 중단한 상태랍니다.

그런데 타종 중단 문제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뜨거운 논란이 있었습니다. 1992년 국립경주박물관은 종의 안전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타종을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종은 쳐야 종이다. 종을 치는 것이 외려 더 안전하다”라는 의견과 “종을 계속 치면 종이 훼손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어요. 경주박물관은 종의 안전 상태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종합안전진단을 실시했고 그 결과 타종이 불가능할 정도의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주박물관은 2001년부터 타종을 재개했어요. 그러나 또다시 종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경주박물관은 2004년 타종을 완전히 중단했습니다.

명동성당에 걸려 있던 서양식 종(1966년). 우리 전통종과 외형 특성이 많이 다르다.
명동성당에 걸려 있던 서양식 종(1966년). 우리 전통종과 외형 특성이 많이 다르다.
○정말로 아이를 넣었을까

성덕대왕신종에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불심이 깊은 한 여인이 아기를 공양함으로써 무사히 종이 만들어졌고 그 후 종을 칠 때면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는 아기 목소리(에미일레라, 에미일레라)가 들린다는 전설이지요. 그래서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어린 아기가 들어간 걸까요? 1990년대 말 국립경주박물관은 성덕대왕신종의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종의 12군데에서 극소량의 샘플을 채취한 뒤 1000만분의 1% 이상 들어있는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만일 종을 만드는 데 아이를 넣었다면 사람의 성분이 나오겠지요. 그러나 사람 뼈 성분의 하나인 인(燐)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인 성분이 모두 날아가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사람을 넣었다는 얘기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에밀레 전설의 의미는 매우 각별합니다. 신라인의 불심과 감동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종과 서양 종의 차이

여기서 한 번, 우리 전통종과 서양 종의 차이를 알아볼까요. 우리 종은 몸통 선이 부드럽게 내려오다 아랫부분이 약간 안쪽으로 오므라든 모양입니다. 나무막대(당목·撞木)로 종의 바깥쪽을 쳐서 소리를 내지요. 땅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곳에 걸어 놓기 때문에 종소리는 아래쪽으로 쫙 깔리면서 굵직하고 은은합니다. 청동으로 만들어 대부분 푸른색이랍니다.

서양 종은 컵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처럼 위쪽이 좁고 아래쪽이 벌어져 있어요. 종 속의 쇠막대기 구슬을 이용해 종의 안쪽을 두드려 종을 칩니다. 높은 곳에 매달아 놓기 때문에 종소리는 높고 가는 편입니다. 우리 종과 서양 종, 그 모양과 타종 방법 등이 서로 대비된다는 점이 꽤 흥미롭습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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