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믿음이 절실한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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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오피니언 팀장
이진 오피니언 팀장
이달 초 여성가족부 등이 통계자료를 하나 냈다. ‘2015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제목이었다. 1∼7일 양성평등 주간을 맞아 기획한 자료로 보였다. 자료에는 대한민국 기혼 남성이라면 익히 짐작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편들이 집안일을 너무 안 한다’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에는 주요 선진국 부부의 가정관리 시간을 비교한 표도 실렸다. 선진국이라도 아내의 가정관리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긴 했다. 캐나다는 1.5배, 미국은 1.6배, 뉴질랜드 1.7배, 영국 1.8배, 호주가 1.9배로 아내들이 남편보다 집안일을 더 오래 했다. 한국은 아내가 남편보다 무려 4.7배 더 길게 가사에 매달렸다. 그래도 한국 아내들은 일본 주부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누를 수 있지 싶다. 일본은 5.3배였다.

자료는 한국과 일본의 집안일 편중 현상을 전통적 성(性) 역할 탓이라고 지적한다. 하긴 예전 어머니들은 아들들에게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가 떨어진다’는 살벌한(?) 경고를 날렸다. 그래도 선진국 남편들이 부엌 출입을 그렇게 많이 할까, 의심이 든다. 혹시 앞마당 잔디 깎기 같은 정원 손질을 가정관리로 쳐준 것은 아닐까? 잔디는 잠깐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우묵장성’으로 변하니 누구의 손이라도 필요하다.

한국 남편들이 집에서 거의 태업에 가깝게 빈둥거리는 행태에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각 가정에는 아내가 정해놓은 질서와 규칙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접시 하나라도 놓는 위치와 각도가, 속옷 한 장이라도 개켜 넣는 법도가 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남편이 아무리 집안일을 해도 합격점을 받기는 틀린 일이다. 노상 낙제라며 지청구를 들으면 ‘에라, 모르겠다’는 심산이 돼 드러눕게 된다. 학생이든, 남편이든 다를 바 없다. 이럴 때 양측이 합의한 기준과 일정 범위의 아량이 필요하고 참고 기다리는 믿음이 요구된다.

어디 집안일만 그러하겠는가. 사장과 직원, 정부와 국민, 국가와 국가 사이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학생이 생활비와 학비를 대기 위해 알바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법대로 임금과 휴식시간을 챙겨주는 사장은 만나기 힘들다. 처음 만난 사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알바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지금 이 시간 어디선가는 고공농성을 하며 태풍에, 무더위에 맞서는 노동자들도 있으리라. 어느 쪽이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사장과 노동자 사이에 믿음이 사라져 한쪽이 피눈물을 흘린다. 내년 최저임금은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대를 꺾었다. 정부가 4개월 전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을 거론해 희망을 부풀렸던 탓이다. 하지만 결과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격이었다. 정부 말을 믿은 이들만 순진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며칠 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서 강제노동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외상이 강제노동을 부인했지만 한국 정부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한일 양국이 합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다. 물론 아베 총리의 말은 ‘국내용’이라는 평가도 있긴 하다. 그렇더라도 한일 두 나라 사이에 모처럼 놓인 상호 신뢰의 다리를 흔들고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20년 전 식민 지배를 사과한 담화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후 그는 91세가 된 지금까지도 신의를 지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믿음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진 오피니언 팀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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