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마포대교 13번 가로등 앞… ‘자살’이 ‘살자’가 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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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기도 한 달, 다시 찾은 마포대교

한때 삶을 포기하려다가 구조된 후 처음으로 지난달 18일 마포대교를 다시 찾은 A 씨(가운데)가 이정남 경위(오른쪽), 윤강일 경사와 함께 한강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한때 삶을 포기하려다가 구조된 후 처음으로 지난달 18일 마포대교를 다시 찾은 A 씨(가운데)가 이정남 경위(오른쪽), 윤강일 경사와 함께 한강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올해 4월 말 밤, 서울 마포대교 위에 우두커니 서 있던 A 씨(20대·여)는 세상 모든 슬픔을 짊어진 듯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빚에 시달리며 살았다. 이 세상엔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 전 가족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A 씨를 더욱 서럽게 했다. 가족조차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마포대교로 향했다.

A 씨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마포대교를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적막하고 외로운 밤이면 A 씨는 한 평 남짓한 고시원 쪽방 침대에 누워 마포대교 난간에 오르는 상상을 했었다. ‘적어도 난간에 서면 누군가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줬으면 했다.

5분여를 마포대교 인도 한복판에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 난간에 오를지 고민하고 있던 순간, 도로 저편에서 A 씨를 향해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이정남 경위(54)였다.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에 설치된 자살 기도자 상담실 ‘희망의 숲’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삶을 포기하려다 구조된 사람들이 남겨 놓은 글들이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에 설치된 자살 기도자 상담실 ‘희망의 숲’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삶을 포기하려다 구조된 사람들이 남겨 놓은 글들이 있다.
2013년 7월 마포대교를 관할하는 용강지구대에 부임한 이 경위가 지금까지 마포대교에서 구한 생명은 모두 162명. 자살을 기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A 씨는 이제 이 경위를 ‘아빠’라고 부른다. 이 경위가 구한 사람 중 10여 명은 A 씨처럼 이 경위를 ‘아빠’라고 부르며 따른다. 이 경위에게 아들딸이 많아진 건 구조 이후에도 자살 기도자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기 때문이다. 이 경위 외에도 용강지구대 경찰들은 한때 삶을 포기하려 했던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끈을 이어가며 이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갖도록 하고 있다.

용강지구대 경찰들이 자살 기도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마포대교가 ‘자살다리’로 오명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72건에 그쳤던 마포대교에서의 구조요청 건수는 2013년에는 303건으로 폭증했다. 지난해에는 362건으로 더 늘어났다. 이는 한강에 있는 다리 31개 중에서 가장 많은 수로 2013년 남성인권 운동가 고 성재기 씨(당시 46세)의 공개 투신 이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뿐만 아니라 마포대교의 자살 기도자 절반 이상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다고 한다. 구조요청이 들어오면 대부분의 자살 기도자는 구조된다. 지난해 구조요청이 들어왔지만 구조되지 못한 사람은 31명이었다. 본보 취재팀은 지난달 18일 자살 기도가 가장 많은 시간대인 오후 8시에서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한때 삶을 포기하려 했던 A 씨와 함께 다시 마포대교를 찾았다.

마포대교 가로등 48개에는 구조 요청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북단에서 남단 방향은 홀수, 남단에서 북단은 짝수가 표시돼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마포대교 가로등 48개에는 구조 요청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북단에서 남단 방향은 홀수, 남단에서 북단은 짝수가 표시돼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자살다리’ 마포대교… 자살 기도했던 그녀와의 동행

자살 기도 이후 처음 마포대교를 찾은 A 씨는 긴장돼 보였다. 이 경위, 윤강일 경사(34)의 야간 순찰차에 동행한 A 씨의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만 흘렀다. A 씨와 함께 용강지구대를 나오기 전에도 중년 여성이 마포대교에서 투신 소동을 벌이다 구조돼 지구대로 들어왔다. 눈물이 가득 맺힌 이 중년 여성은 지구대에 설치된 ‘희망의 숲’ 상담실로 들어가 상담을 받았다. 곧이어 달려온 이 여성의 남편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여러 차례 다투다 보니 아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며 아내를 데리고 돌아갔다. A 씨는 그 광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순찰차에 올랐다.

순찰 지역은 용강지구대 관할인 마포대교 북단에서 남단에 이르는 차로. 마포대교의 남단에서 북단 차로는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관할이다. 용강지구대 소속 각 팀에서 경찰관 2명은 마포대교 전담 경찰관인 ‘희망 지킴이’로 지정돼 근무시간 중 전담 순찰차를 타고 매일 수차례 마포대교를 순찰한다. 자살 기도자 본인이나 지인 혹은 행인들의 구조요청 없이 투신하러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관할 지역에서 강력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구조요청이 들어오면 전담 경찰관 2명은 마포대교로 가서 인명 수색에 나선다.

마포대교 북단의 공터에 차를 댄 이 경위는 “관할 지역 순찰을 돈 후 이곳에서 잠시 대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마포대교를 마냥 순찰하는 것보다 위급한 신고가 들어왔을 때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인명 구조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순찰차는 공터를 지나 A 씨가 자살을 기도하려 했던 곳으로 향했다.

A 씨가 자살을 기도하려 했던 장소는 마포대교 13번 가로등이 있는 곳. 자살이 급증하자 서울시와 경찰은 마포대교의 신호등에 숫자를 매겼다. 북단에서 남단은 홀수 번호로, 남단에서 북단은 짝수 번호다. 구조요청이 들어와도 정확한 위치를 몰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경위는 표지판을 가리키며 “현재 마포대교에 자살 방지용으로 설치된 장치 중 가장 유용하다”고 말했다.

13번 가로등이 있는 곳 ‘누구한테도 하지 못한 얘기’라는 글귀가 있는 곳에서 한 달여 전 A 씨는 하염없이 울었다. 다시 이곳을 찾은 A 씨는 “당시에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그저 슬펐다”며 멋쩍게 웃었다. ‘앞에 있는 글귀가 보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씨는 “글귀가 보였는데 글귀가 더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 경위도 “자살 기도자들에게 물어보면 마포대교에 있는 글귀가 더 우울하게 만든다는 대답이 많다”며 “글귀가 더 힘 있게 사람을 격려하는 문구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찰차가 마포대교 중간을 지날 무렵 대화 주제는 ‘SOS 생명의 전화’로 바뀌었다. A 씨는 “자살하려는 사람이나 고민이 있는 사람이면 얼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데 생명의 전화는 지나치게 개방돼 있다”면서 “공중전화처럼 부스라도 만들면 더 많이 이용하지 않을까 싶다”고 꼬집었다. 마포대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는 총 4대. 2011년 설치된 생명의 전화로 지난해 9월까지 총 2351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살을 결심하고 찾아왔다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 사연을 형상화한 동상.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자살을 결심하고 찾아왔다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 사연을 형상화한 동상.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긴박한 구조… 살리려는 사람들의 애환

13번 신호등을 지나 순찰차가 여의도에서 다시 마포로 향할 무렵 자살 구조요청 무전이 흘러나왔다. 경기도에 사는 한 가정주부가 부부싸움 끝에 자살을 하겠다며 집을 나섰다는 것. 남편의 신고 이후 경찰은 이 여성의 휴대전화를 추적해 이 여성이 마포역과 마포대교 북단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곧 꺼져 위치 파악이 어려워졌다.

“야식으로 감자탕을 먹자”고 A 씨에게 웃으며 얘기하던 이 경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A 씨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순찰차는 마포대교를 30∼40km의 속도로 서행했다. 차 안에서 이 경위는 남편이 보낸 여성의 사진과 지나가는 시민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여성을 찾았다.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는 차에서 내려 일일이 확인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마포대교와 마포역 인근을 3번이나 확인했지만 여성은 찾을 수 없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A 씨는 손을 꼭 모은 채 입에 가져다 댔다. 이 경위도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옆에 있던 윤 경사는 “신고가 들어와도 휴대전화가 꺼져 있으면 위치 파악이 어려워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부담감이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 씨는 “이렇게 힘들게 사람을 구하는 줄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다행히 중년 여성은 1시간 뒤 마포역 근처에서 발견됐다. 여성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A 씨는 “정말요?”라며 몇 번이나 이 경위에게 되물었다. A 씨와 이 경위, 윤 경사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그러나 지구대로 가기를 거부하는 여성 때문에 경찰은 30분간 실랑이를 벌였다. 이 경위는 끝까지 여성을 설득해 지구대로 데려갔다. 여성의 남편은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지구대에 있던 아내를 데려갔다. 이날 구조요청은 더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용강지구대 경찰들의 이날 근무도 이렇게 끝이 났다.

마포대교에는 용강지구대 외에도 여의도지구대, 한강수난구조대 등이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1.3m인 마포대교의 난간을 2m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4월 발표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마포대교#자살#SOS 생명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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