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유승준과 국민 정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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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
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
얼마 전, 유승준의 이름이 다시 뉴스에 올랐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기피한 일에 대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사죄했기 때문이다. 제작진 몰래 케이블 음악 생방송에 출연하거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호시탐탐 한국으로의 귀환 의사를 밝혀 오던 그가 이번에는 자기 나름의 정공법을 택한 셈이다. 그는 자식의 손을 잡고 한국에 들어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피력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입대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이가 지나 입대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예상대로 세간의 반응은 냉담했다. 군대에 유독 예민한 남성들의 질타에 국한한 것은 아니었다. 절묘하게 군대에 갈 수 있는 나이가 지나 버리자마자 인터뷰를 잡은 것에 사람들은 눈을 흘겼다. 유명 정치인들은 앞다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승준을 비판했고 병무청은 유승준의 미국 이름인 스티브 유를 써 가며 그의 읍소에 다소 신경질적으로 일일이 반박했다. 여기에 세금을 덜 내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대한민국에서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남녀노소 공히 만장일치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피하는 것만큼 금기인 일이 또 있을까? 유승준 사건이 터졌을 무렵,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도 아들의 병역 문제로 결국 낙마했으니, 병역 문제는 한국사의 주요 사건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전히 병역 문제는 부동산 문제, 세금 문제와 함께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자 하는 인물이 군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그것은 자신이 할 일, 즉 나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유승준이 공인이라고 해서 인사청문회에 오르는 공직자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그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짊어져야 할 의무를 회피했다는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부는 유승준의 입국 허가에 대해서 일말의 재고도 없다는 눈치다. 작년 초 병무청은 ‘유승준이 국내에 입국해 연예 활동을 하게 되면 군 장병 사기 저하, 신성한 병역의무에 대한 경시 풍조 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따라 입국 금지해 둔 상태’라고 밝힌 적이 있다. 출입국관리법 제11조 제1항 제3조 표현에 따르면, 유승준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 해당하여 ‘출입국 부적격 인물’이다.

국경 관리는 주권을 가진 국가의 고유한 권한이다. 그러므로 유승준에게 끝까지 입국을 불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앞으로도 그가 아들의 손을 잡고 자유롭게 인천공항을 밟는 것은 보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결정은 자못 불공평해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불법도 저지르지 않은 유승준을 다른 사람과는 달리 유독 미워하는 정부의 대응이라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정서다. 아마도 정부는 유승준이 진정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인물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활동 당시 수많은 팬에게 공공연히 약속했던 군 입대를 저버리고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해 미국으로 망명하듯 떠난 것은 배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대부분의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정확히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한 이중국적자의 약삭빠른 판단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현재 대한민국의 군대는 심각하게 불신받고 있다. 어떤 이에게 군대는 여전히 몸 바쳐 나라를 지키는 성스러운 의무를 수행하는 집단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보수적인 의사결정 제도를 고수하는 꽉 막힌 집단이자 각종 사고의 온상일 뿐이다. 특히 최근 벌어진 각종 성추문과 총기 사고가 군대 내의 오랜 적폐가 터져 나온 현상이라면 각종 편법을 통해서라도 군대는 가능하다면 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만일 유승준처럼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그래도 약 2년에 이르는 인생의 청년기를 나라를 위해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포기하고 군대를 피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 앞에서 유승준을 맹렬히 공격하는 국민의 정서는 군대에 대해 점점 더 불신을 쌓아 가는 국민의 정서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쩐지 비극적인 일이다.

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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