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방향타… 美中日 실리행보속 나홀로 갈팡질팡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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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한국외교/新 실용의 길]<上>동북아 격랑속 한국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을 기점으로 한국 외교의 민낯이 드러났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 한마디도 사죄하지 않았지만 미국 의회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본은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미국과 신안보동맹을 확인하고 한국을 미일 주도의 3각(한미일) 협력에 끌어들이려고 압박하고 있다. 이는 한일 역사문제를 미결 상태로 남겨둔 채 한중, 한미, 한일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접근전략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대미, 대일 외교뿐 아니라 총체적인 외교 난맥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데다 정부 내부 목소리조차 통일하지 못해 자중지란이 반복되는 탓이다. 그러다 보니 외교 전략을 가다듬기는커녕 “문제없다”는 식의 언급만 되풀이해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단순히 외교안보 라인의 쇄신이 아니라 근본적인 접근법 변화를 모색할 시점이다. 》  
“사퇴생각 없나” 국회서 난타당한 尹외교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외교전략 부재 질타에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윤 장관은 최근 대일 외교 논란과 
안보위기 책임을 묻는 사퇴 요구에 대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왼쪽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사퇴생각 없나” 국회서 난타당한 尹외교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외교전략 부재 질타에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윤 장관은 최근 대일 외교 논란과 안보위기 책임을 묻는 사퇴 요구에 대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왼쪽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외교부뿐 아니라 한국 외교 전체가 문제

외교 격랑에 노출돼 있지만 당국의 인식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국민이 몰라서 그렇지 실제 한국 외교는 잘하고 있다는 식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미·중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축복”(재외공관장회의 개막사) “한국 소외론, 외교전략 부재 비판은 과도한 해석”(외교안보 당정협의회 답변) 발언이 대표적이다.

윤 장관은 “아베 총리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밝힐 황금 기회를 스스로 놓친 것은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사 미해결이 결국 일본의 손해로 돌아갈 것이라는 뜻인데 마치 ‘천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처럼 들린다. 주철기 대통령외교안보수석은 지난달 30일 강연에서 “올해 한일관계를 반드시 해결하겠다. 연중 한중일 3국 정상회담까지 회복시키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 두 사람의 말에서 한국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나 논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 난맥상은 외교부만의 현상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은 러시아 전승기념절 행사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난달 29일 국회에 보고했지만 이튿날 러시아가 “김정은 불참”이라고 공개해 망신을 당했다. 일본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군함도(일본명 하시마·端島) 등 강제징용 시설 등재 결정이 임박한 때 교육부 출신인 주유네스코 한국 대표부 대사가 임기 도중 기관장 공모 신청을 이유로 귀국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독도 입도지원시설 건립은 지난해 범정부 차원에서 보류하기로 결론이 난 사안. 하지만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3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주권 행사의 일부이므로 적극 검토하겠다”고 딴소리를 했다. 존재감이 없는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하면서 비롯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한국과 대비되는 미중일의 실리 외교

박근혜 정부의 대외전략 캐치프레이즈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3가지다. 하지만 어느 것도 외교 지향점으로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4일 “신뢰, 평화협력이라는 수단만 있고 그 수단으로 어떻게 무엇을 만들겠다는 비전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중일 3국과 한국의 외교 전략을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첫 임기를 시작할 때 ‘핵무기 없는 세상’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결국 올해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지었다. 또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미일호(호주), 미일인(인도) 관계를 확대하며 중국 압박을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신형대국관계’ 브랜드로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맞대응하면서 남중국해 영유권을 강화하는 G2 위상을 확고하게 만들었고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따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택한 구호는 ‘적극적 평화주의’다. 과거 침략전쟁조차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주의라는 표현이 위선적이지만 집단적 자위권 확보, 평화헌법 해석 개헌,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등 외교적 실리를 챙겼다. “대과(大過)가 없었다”는 말로 요약되는 한국 외교의 성과와 확연히 비교된다.

전직 외교안보 부처 고위 당국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안보 전략의 큰 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방향타#외교#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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