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선미]여행하는 소비자, 투어리슈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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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결론부터 말하면, 다 여행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여행하는 소비자’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나는 이들을 투어리슈머(Tourisumer)라고 이름 지었다. 여행자(Tourist)와 소비자(Consumer)를 합친 말이다.

요즘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날로 치솟는 것도, 유통 대기업들이 올해 7월 추가로 선정될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에 사활을 거는 것도, 샤넬이 이례적으로 아시아에서 주요 제품 가격을 내린 것도 다 투어리슈머 때문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최근 말했다. “인구 1500만 명 이상 되는 도시가 20개이고, 이 중 10개가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에는 앞으로 1000개의 공항이 더 생길 겁니다. 중국을 한 개의 나라로 보면 안 됩니다. 적어도 15개 나라로 봐야 하지요.” 역시 크게 보는구나, 하고 나는 놀랐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최근 펴낸 ‘럭셔리 시장연구―국경 없는 소비자의 부상’이란 보고서에서 “럭셔리 업계는 이제 여행객들의 씀씀이에 달려 있다. 여행객들이 누구인가가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현재 럭셔리 시장의 가장 큰손은 중국인이다. 2000∼2014년 럭셔리 소비자를 국적별로 분석하니 중국인이 29%로 가장 많았고 미국인(22%), 유럽인(21%), 일본인(13%) 순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 중국인 소비의 절반 이상이 여행지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1997년에서야 해외 단체관광을 허락한 중국 정부는 2000년엔 춘제(중국 설)와 국경절을 유급 국경일로 정해 중산층에게 여행할 시간을 줬다. 2009년엔 진정한 의미의 해외여행 자유화를 실시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곳이 공항이다. 중국인은 호텔과 항공비는 아껴도 쇼핑은 화끈하게 한다. 공항은 경제적 쇼핑의 꿈을 주는 거대 쇼핑몰이다. 럭셔리 상품의 유통채널 중 공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3년간 11% 늘었는데, 공항 매출 중 화장품 비중이 무려 72%다. 아모레퍼시픽이 승승장구하는 비결이요, 서 회장이 중국의 공항 증가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이 올해 유통업계 최대의 ‘황금알’이 된 것도 투어리슈머의 영향이다. 동아일보는 최근 ‘10조 시장 면세점을 잡아라’ 기획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각 기업의 ‘출마의 변’을 들어보았다. 한결같이 “우리가 하면 외국인 관광객 유입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저가항공 덕분에 투어리슈머는 마음이 동하면 훌쩍 여행에 나선다. 스마트폰의 정보력이라면 낯선 장소의 여행도 두렵지 않다. “어느 나라를 가봤느냐”가 아니라 “어느 도시에서 무엇을 했느냐”의 시대다. 시내 면세점은 이제 도시 여행의 일부다.

샤넬이 최근 주요 제품의 가격을 대륙별로 조정한 것도 투어리슈머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유로화 약세는 샤넬 브랜드 가치를 위협했다. 가격 조정 전 국내 병행수입업자들은 고객들에게 신나게 휴대전화 문자를 날렸다. “국내 매장가보다 100만 원 싸게 구해 드릴게요.” 여행과 인터넷으로 똑똑해진 투어리슈머는 쇼핑의 민주화를 누리게 됐다. 샤넬은 내년 가을부터 온라인 판매도 시작한다. 고급 매장에서의 서비스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럭셔리 업계의 높은 벽을 투어리슈머가 무너뜨린 ‘사건’이다.

우리 투어리슈머는 이 ‘새로운 권력’을 어떻게 쓸 것인가. 외국 투어리슈머의 마음은 어떻게 얻을 것인가. 한 가지 더. ‘여행하는 중국인 소비자’가 쇼핑의 흥분을 가라앉히면 그 이후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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