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황강댐서 강물 44% 써버려… “논밭까지 짠물 올라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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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타는 한반도]
임진강 농민들 가뭄에 한숨

《 임진강이 메마름을 넘어 타들어가고 있다. 상류인 북한에서 대규모 댐을 건설한 이후 전기 생산과 용수 공급을 이유로 남쪽으로 물을 흘려보내지 않는 탓이다. 말라 버린 강을 따라 바닷물이 대량으로 밀려오면서 이 일대 농민과 어민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진강을 남북이 공동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댐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최악이고 댐 기능 강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아 임진강 일대 가뭄 피해는 자칫 연중 계속되는 재난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임진강 군남댐 수문 13개 중 1개만 개방 30일 경기 연천군 군남댐 하류에서 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이 
메마른 임진강변을 촬영하고 있다. 현재 군남댐은 가뭄과 상류에 위치한 북한이 물을 내려보내지 않아 저수량 부족으로 수문 13개 중
 1개만 열어 놓고 있다. 연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임진강 군남댐 수문 13개 중 1개만 개방 30일 경기 연천군 군남댐 하류에서 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이 메마른 임진강변을 촬영하고 있다. 현재 군남댐은 가뭄과 상류에 위치한 북한이 물을 내려보내지 않아 저수량 부족으로 수문 13개 중 1개만 열어 놓고 있다. 연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못자리는 무슨 못자리야, 해수(海水) 때문에 올해 농사 다 망치게 생겼는데.”

29일 경기 파주시 장산1리에서 만난 이장 이영수 씨(63)는 격한 감정을 토해냈다.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은 임진강 하구에서 22km 떨어진 곳으로 임진강이 삶의 터전이다. 마을 주민들은 임진강에서 물을 길어 벼농사를 짓고 민물장어를 잡아서 내다 판다. 그러나 한 해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이맘때 첫 단계인 못자리도 아직 만들지 못하고 4월 중순으로 미뤘다. 임진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이 줄면서 임진강 중류까지 차오르고 있는 해수 때문이다. 이 씨는 고무대야 가득 불려놓은 볍씨를 보며 “몇 년 전부터 해수가 이렇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작년과 올해는 정말 죽을 맛”이라면서 “해수가 너무 많다 보니 농사가 불가능해 어제는 지역 농어촌지사장에게 지하수를 파달라고 요구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봄이면 임진강 명물인 황복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도 유량 감소에 따라 어획량이 줄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 물길 틀어쥐고 물 안 주는 북한

이런 피해는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댐을 건설한 뒤 하류인 남쪽에 물을 내려보내지 않아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강수량 부족이다. 올해 파주 지역의 강수량은 1월부터 3월 29일까지 47.9mm에 그쳤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파주 지역의 1∼3월 평균 강수량 85.52mm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가뭄이 심하다 보니 북한이 전력 생산과 용수 공급 등을 이유로 임진강 하류로 물을 내려보내지 않고 있다. 북한은 2007년경 군사분계선에서 30km 떨어진 곳에 황강댐(저수량 3억5000만 t)을 완공했다. 유역변경식 발전시설을 갖춘 황강댐은 임진강 물을 낙차가 더 큰 예성강 쪽으로 보내 발전을 하고 있다. 예성강 유역에 필요한 용수 공급도 담당하는 셈이다.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경기 연천군 군남댐(저수량 1300만 t) 하류 지점에서 측정한 결과 황강댐 완공 후 임진강의 갈수기 수량은 44.4% 감소했고, 평상시 수량은 18.1% 줄어들었다. 황강댐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40km 떨어진 군남댐으로 바로 들어온다. 북한은 황강댐 외에도 임진강 상류 지점에 소규모 보 형태의 소수력발전소 4곳을 운용하고 있다.

임진강 본류에 건설해 놓은 군남댐은 상류인 북한 쪽에서 유입되는 수량이 워낙 적다 보니 하류로 물을 공급하지 못할 정도다. 29일 찾은 군남댐은 비상체제였다. 초당 5t가량의 물을 방류하고 있는 군남댐에 상류인 북한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의 양은 초당 1t에 불과했다. 임진강에 필요한 물은 하루에 300만∼400만 t 규모이지만 군남댐에서는 하루에 40만∼50만 t밖에 물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문 13개 중 1개만 고작 8cm를 열고 하류로 물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공동 관리하고 댐 기능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북한과 공동으로 임진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석환 대진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북한은 전기가, 우리는 물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면서 “호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임진강 뱃길관광 사업 등을 추진해 북한에 이득을 준다고 설득하는 한편 우리의 실익도 챙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9월 북한이 갑자기 황강댐 수문을 여는 바람에 임진강에서 야영하던 국민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수문을 연다’는 통보를 보내기도 했지만 이처럼 극심한 가뭄 피해 때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임진강 물 관리를 놓고 일방적인 피해가 계속되는데도 우리 정부가 공동 관리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안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속수무책으로 가뭄 피해를 당하자 정부 차원의 대책과는 별도로 경기도는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 하류에 올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한탄강댐(저수량 2억6000만 t)이 홍수 대비만이 아닌 가뭄 해결의 기능도 하게 해달라고 수자원공사에 요청했다. 그러나 한탄강 상류인 강원 철원군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이 예상된다. 댐 건설 때부터 철원 주민들은 가뭄 해결을 위해 물을 가두면 침수 지역이 발생할 뿐 아니라 안개가 발생해 일조량이 줄면서 농작물 작황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환경단체는 다목적용 댐으로 전환하면 철원군 철원읍 일대의 두루미 군락이 파괴된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파주·연천=황성호 hsh0330@donga.com·김기정 기자
#임진강#가뭄#황강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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