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드레이 란코프]北-中 관계 악화와 북한 엘리트의 활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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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中의 과도한 정치간섭 우려… 최근 러시아 향해 구애 손짓
유가 하락-서방 제재로 위기에 몰린 러시아… 北후원-장기투자 관심없어
해킹으로 고립 심화된 北, 투자해줄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하고 있다. 거의 완공된 채 공사가 중단된 신(新)압록강다리나 철탑을 세웠지만 훈춘∼나선 송전선은 전기선이 없다. 중국의 투자 동결을 상징한다. 중국 정부는 작년부터 북-중 민간무역을 반대하진 않고 있지만 중앙정부 예산으로 후원한 대북(對北) 투자를 중단했다. 결국 중국이 지지했던 인프라 개발은 모두 동결됐다.

이 같은 위기를 초래한 것은 제3차 핵실험과 장성택 숙청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적대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북한의 내부적 안정을 필요로 한다. 핵실험이나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북한 지도부가 위기를 예방할 의지가 있었더라면 중국의 불만과 짜증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위기를 완화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중국에 대한 언론 비판, 중국의 투자에 대한 압력과 몰수 등으로 북-중 관계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북한의 정치 엘리트들이 중국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1950년대 말부터 북한이 대외정책에서 지켜온 기본 원칙은 북을 후원하는 강대국이 적어도 2개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이후 미국이나 남한과의 관계 악화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 북한은 이런 원칙을 부지불식간에 위반하게 됐다. 북한의 정치 엘리트는 북한 무역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아무 때나 경제적 의존도를 이용해 북한의 정치에 간섭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 때문에 북한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나라를 찾는 동시에 중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최근 북한 정권은 러시아에 큰 희망을 걸고 있지만 그 희망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위기 발발과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크게 어려워졌다. 국내 정치에서도 권위주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옛 소련에 대한 향수가 강해졌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이를 보면서 러시아가 옛 소련처럼 북한 같은 반미(反美)세력이라면 세계 어디든 물질적으로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오판이다. 옛 소련과 달리 러시아는 해외에서 인기를 높이기 위해 돈을 투자할 의지가 전혀 없는 나라이다. 러시아 대외정책의 기본은 현실주의뿐이다. 러시아는 대외정책을 위해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대외정책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나라다. 최근 유가 하락 및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에서 복지의 붕괴를 예방하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원을 필요로 하는 만큼 대외정책에서 더욱 돈을 아껴 쓸 수밖에 없다.

물론 러시아와 상호주의에 따른 무역과 경제협력은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 정치 엘리트들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는 단기적으로 이윤을 낼 프로젝트에만 투자하고 일방적 후원이나 오랫동안 이윤을 올릴 수 없는 투자에까지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 이후 북한이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과 협력할 수 있는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래서 좋든 싫든 대북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체제 유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한국의 투자를 무섭게 생각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중국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 ‘6·28방침’이든 ‘5·30조치’든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내부 잠재력을 촉진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지만, 고도 경제성장은 철도 도로망을 비롯한 낙후된 인프라 개발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싸고 복잡한 인프라 복구와 개발은 대규모 외국투자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투자 유치의 성패는 북한 체제가 ‘개발독재’ 형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변수다.

그러나 북한의 결정권자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은 북한 휴대전화 사업으로 번 5억 달러의 수익을 본국으로 송금하지 못한다. 북한의 인프라 개발에 투자하려던 중국은 북한의 거친 태도로 갈등을 겪고 있다. 북한 엘리트들이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약속을 잘 지키고 투자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사상보다 경제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북한 경제의 성패뿐 아니라 북한 엘리트의 생사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andreilankov@gmail.com
#북한#중국#북한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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