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상담실 찾았더니 문제사원 취급” 심리치료가 ‘빅브러더’ 변질땐 역효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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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의 화이트칼라]근로자 정신건강 지원 어떻게

엘리트 화이트칼라들에게 회사는 더 이상 따뜻한 일터가 아니라 거대한 ‘빅 브러더(감시자)’였다. 고용 불안과 무한경쟁으로 넥타이는 쇠사슬이 됐지만 국내 근로자의 심리 지원 환경은 척박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직원에 대한 회사 측의 섣부른 대응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사내외 상담실을 운영하지만 상담 내용을 인사팀 관리 자료로 삼거나 심한 경우 상담실 방문 자체가 ‘주홍글씨’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부 대기업은 상담 지원과 더불어 치유 캠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관심 사병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운영하는 ‘그린캠프’와 유사한 형태로 짧은 기간 교외 휴양림에서 머물며 다양한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가 일방 통보되고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참여자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한 캠프 참가 직원은 “결국 그 캠프에 가게 된 사람들은 서로 공통점을 찾게 됐고, 상담을 받았거나 휴직했는 등 소위 ‘문제아’들만 모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민망하고 참담했다”고 전했다.

선진국에서는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Employee Assistant Program)’이 규모가 큰 산업 컨설팅 분야지만 국내에선 아직 미약한 단계다. 정신적인 문제를 직원 개인의 문제로 돌리거나 은폐하기보다 조직 운영의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효율성을 넘어선 조직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금융권의 근로자 상담 및 지원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한국EAP협회 임성견 사업팀장은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20, 30대 연배의 대리 과장 초임급이다. 40대 이상 직원들은 상담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상담 정보가 회사로 유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내 상담실이나 클리닉은 철저히 회사와 독립된 곳을 선정하거나 외부 진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화이트칼라의 정신질환 문제는 개인의 손실을 넘어 사회적 생산성과 시장 안정성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근로자들의 죽음을 보며 느낀 건 그것이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한 가족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이었다”며 “이제는 근로자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부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근로자 정신건강#심리치료#빅브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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