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억 들여 만든 ‘위험통로’ 고라니는 겁이 납니다

이종석기자 입력 2014-12-20 03:00수정 2014-12-20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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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고라니 눈에 비친 생태통로 실태
잘된 사례, 잘못된 사례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터널형 생태통로는 맞은편 출구가 훤히 보일 만큼 개방도가 높다. 흙바닥에 양 벽면과 천장에 나무를 덧댄 이곳은 잘 만들어진 생태통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위쪽 사진). 경북 성주군에 있는 터널형 생태통로는 개방도가 낮아 입구에서 맞은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태통로는 야생동물들이 들어서기를 꺼린다. 국립공원관리공단·환경부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고라니’입니다. 사슴과(科)에 속하는 동물인데요, 사슴과의 다른 동물과 달리 암수 모두 뿔이 없는 게 특징이지요. 저는 나뭇잎 중에서도 가지 끝 부분에 달린 연한 잎만 주로 먹는 아주 온순한 초식동물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립종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저를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상황인데도 한국에서 저는 유해야생동물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의 서식 밀도가 너무 높아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건데요, 그래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저를 멧돼지 등과 함께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저는 수렵대상종에 포함된 상황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을 받으면 저를 사냥하거나 포획해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 저의 가족들이 많기는 합니다. 전부 몇 마리나 되는지 정확한 수치는 없습니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0만 마리 정도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서식지 밀도조사에서는 km²당 6.9마리의 고라니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요, 주요 서식지에서의 밀도만 놓고 보면 멧돼지(4.2마리)보다 더 많아요.

지리산 시암재에 있는 생태통로를 지나는 고라니의 모습이 생태통로 안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잡혔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오대산국립공원을 지나는 국도에 설치된 육교형 생태통로.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평창=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제 소개가 길어졌네요. 하나만 더 보태겠습니다. 오늘 하려는 얘기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한국도로공사는 매년 야생동물의 고속도로 교통사고 피해(로드킬) 건수를 집계하는데요, 해마다 로드킬을 가장 많이 당하는 동물이 바로 저희 고라니예요. 지난해에만 1939마리의 동료들이 고속도로에서 비명횡사했는데요, 두 번째로 많은 너구리(146마리)와 비교해도 엄청나게 많은 숫자입니다. 최근 5년(2009∼2013년)간 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만 9000마리가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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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막으려고 만들어 놓은 게 있는데요, 바로 생태통로입니다. 도로나 철도 건설 등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단절되는 것을 막고 야생동물의 안전한 이동을 돕기 위해 설치한 인공 구조물이지요.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르면 국가나 지자체는 도로 철도 등의 관리 주체에게 생태통로 설치를 요청할 수 있는데요, 이런 요청이 있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생태통로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곳곳에 설치된 생태통로들이 솔직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더 많이 다니는 생태통로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 터널형 생태통로가 하나 있는데요, 터널 입구에서 보면 맞은편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터널의 길이에 비해 폭이 좁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동물이 그렇지만 우리 같은 초식동물들은 특히 더 겁이 많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곳은 지나가기가 무섭습니다. 특히 좁고 긴 터널은 더욱 그래요. 터널의 맞은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생태통로는 저에게 있으나 마나 한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부의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지침’에도 포유류를 위한 터널형 생태통로는 개방도가 0.7 이상이어야 한다고 돼 있는데요, 하지만 이를 지킨 생태통로는 많지 않습니다. 터널형 생태통로의 개방도는 통로의 단면적(폭×높이)을 길이로 나눈 것인데요, 생태통로가 길수록 양쪽 출입구도 그만큼 넓어야 개방도가 올라가겠지요.

이번에는 육교형 생태통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지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좀 전에 말한 터널형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경북 김천시에 있는 생태통로를 보면 바닥은 전체를 벽돌로 깔아 놓았고 가로등까지 설치해 놓았습니다. 사람도 함께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요. 이 생태통로 인근엔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생태통로의 위치 선정과 설계가 잘못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야생동물이 사람의 발길이 잦은 곳을 꺼린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저도 멀리서 사람의 소리만 들리면 달아나거든요. 그래서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지침에도 사람의 접근과 이용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사람이 생태통로를 함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경우라도 보행자의 동선은 야생동물 이동 공간과 분리해 흙길로 만들어야 합니다.

경기 광주시에 있는 육교형 생태통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생태통로가 아파트 단지 경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생태통로 옆으로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샛길이 나 있고요, 심지어 생태통로 한쪽에는 인근 주민이 가꾸는 것으로 보이는 텃밭도 보입니다. 만들어만 놓고 관리는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육교형 생태통로도 따라가다 보면 공장지대로 연결됩니다.

이렇다 보니 생태통로를 야생동물보다 사람이 더 자주 이용한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이석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10월 국정감사 때 낸 자료를 보면 전국의 415개 생태통로 중에 사람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지나간 곳은 176군데(42.4%)입니다. 야생동물(발굽동물 기준)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지나간 119곳(28.7%)보다 더 많습니다. 한 달 내내 야생동물이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은 생태통로가 296곳(71.3%)이나 된다고 하네요.

전북 남원시에 있는 육교형 생태통로는 따라가다 보면 절벽에 가까운 절토면에 막혀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이쯤 되면 말 못하는 짐승이 다니는 길이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생태는 없고, 통로만 있다

터널형 생태통로의 경우 수백만∼수천만 원 정도의 돈으로 만들 수 있지만 육교형은 수억∼수십억 원이 들어갑니다. 많게는 수백억 원이 들어간 육교형 생태통로도 있는데, 2012년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만들어진 육교형 생태통로에는 380억 원의 예산이 쓰였다고 하네요.

생태통로 설치에는 이렇게 큰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왜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까요. ‘통로’만 생각하고 ‘생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태통로를 만들기 전에는 우선 목표종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로 어떤 동물이 생태통로를 이용하게 될 것인지를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생태통로 주변의 나무도 해당 동물의 먹이원 등을 고려해 심어야 합니다. 초식동물들이 상위 포식자를 만났을 때 몸을 숨길 수 있는 엄폐물까지 만들어 준다면 더 좋겠지요.

최근 들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생태통로를 설치하는 대부분의 기관은 그동안 동물의 생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생태통로 설치와 관리 기관은 장소에 따라 다른데요, 국도에 있는 건 국토교통부, 지방도는 광역자치단체,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가 맡고 있답니다.

전문가 관리 생태통로 많지 않아

제대로 된 생태통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오대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국도 6호선에 설치된 육교형 생태통로는 식재가 잘 되었습니다. 무인카메라와 동물의 키 높이를 재기 위한 깃대도 설치돼 있습니다. 동물의 발자국을 확인하기 위해 모래트랙도 깔아 놓았지요. 무인카메라와 모래트랙은 주로 어떤 동물이 생태통로를 이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후 생태통로의 관리에 참고합니다.

한계령을 지나는 국도 44호선에 있는 육교형 생태통로도 마찬가지로 관리가 잘되고 있는 편인데요, 여기서는 멸종위기동물 2급인 삵의 배설물을 군데군데서 볼 수 있습니다. 배설물 흔적은 삵이 그만큼 이곳을 자주 지나다닌다는 표시이겠지요.

강원 평창군 월정사 입구에는 터널형도, 육교형도 아닌 보기 드문 생태통로가 하나 있는데요, 차들이 다니는 길 양쪽에 장대를 세우고 장대 양끝을 굵은 밧줄로 연결해 놓았습니다. 다람쥐와 청설모 전용 생태통로입니다. 밧줄 중간쯤에는 조그만 깡통 하나가 매달려 있는데요, 밧줄 위를 지나다 매 같은 맹조류의 상위 포식자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몸을 숨기라고 만들어 놓은 은신처입니다. 세심한 배려입니다.

이렇게 관리가 잘되고 있는 생태통로들은 대부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맡고 있는데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공원지역 안에 생태통로를 직접 설치하기도 하고, 공원구역을 통과하는 도로의 관리 주체가 만든 생태통로를 위탁받아 대신 관리하기도 합니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이 직접 챙기다 보니 국립공원 내 생태통로는 관리가 잘되고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국 415개 생태통로 중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하고 있는 건 11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2017년까지 국립공원 구역 안에 9개의 생태통로가 추가로 설치된다는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국립생태원이 전국의 생태통로 관리 개선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 또한 반가운 일입니다. 국립생태원은 2015년 상반기에 관리 수준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생태통로 관련 정보를 사진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관리가 잘되고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 각 관리기관의 생태통로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제 얘기 하나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고라니의 로드킬 피해가 왜 그렇게 많을까요. 개체 수가 많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고라니의 서식지가 주로 고속도로가 많이 지나는 저지대여서 로드킬 피해가 많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운전자 여러분! 야간 고속도로 운전할 때 고라니 출몰 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면 ‘잠시 서행’ 부탁드려요.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고라니#생태통로#로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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