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영무]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독재자들의 말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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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
문명 발전과 인간성의 퇴행은 정비례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눈부신 문명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잔혹성은 무한대로 진화했다. 올 들어 무고한 5명의 영국인과 미국인을 참수하고 수만 명의 인명을 집단 학살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의 야만성은 이런 인간성 퇴행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희생된 4000만 명 외 장기 독재자들의 폭정과 내전, 테러 등 각종 무력충돌로 전 세계에서 500여만 명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IS를 비롯해 엄청난 규모의 집단학살을 자행한 폭군과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법의 심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폭군들에 의한 무고한 희생과 ‘무법현상(impunity)’에 인류는 좌절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유엔이 199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5개의 지역 특별국제형사재판소와 2002년 문을 연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세계 각지에서 폭군들이 자행한 각종 집단학살 등 반인륜 범죄를 응징함으로써 이런 무법현상에 제동을 건 것은 다행이다. 이 2원적 국제형사재판소의 법치주의는 미래 폭군의 출현을 막고 집단학살에 의한 무고한 희생을 예방하는 데 국제법상 이정표가 되었다.

집단학살 등 인권 유린으로 국제형사재판에서 처벌받은 폭군들은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66·50년형)과 1970년대 자국민 200만 명을 학살한 ‘크메르루주’ 2인자 누온 체아(88·종신형), 키우 삼판(83·종신형) 등이다. ‘킬링필드’ 참극 후 35년 만의 응징이지만 어떤 폭군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값진 교훈이 되었다. 콩고민주공화국 내란의 반군지도자 토마 루방가도 2012년 전범과 집단학살 죄로 14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ICC는 현재 수단 다르푸르 집단학살(40만 명) 외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 콩고,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케냐, 말리 등 8개국에서 폭군들이 범한 집단학살 등에 대해 심판 중이다.

ICC는 다르푸르 집단학살범인 오마르 바샤르 수단 대통령 등 7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들의 신병 확보를 추진 중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중심국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아들 사이프 이슬람, 압둘라 세누시(정보부장) 등도 반인륜 범죄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으나 카다피는 시민군에게 처형됐고 이슬람과 세누시는 ICC 심의를 거쳐 리비아 국내 재판으로 이관됐다.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은 체포돼 헤이그에서 반인륜 범죄로 재판 중이다. 그의 부인에게도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ICC와 5개 특별형사재판소는 지금까지 전현직 최고통치자 등 4명의 폭군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심판 중이거나 선고까지 마친 상태다.

북한이 최근 김정은 등 최고책임자들의 ICC 회부를 권고한 유엔인권결의안에 대해서 10만 군중대회와 욕설폭탄 등으로 연일 거칠게 반응하는 것은 ‘법의 지배’를 무력화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나치와 크메르루주의 잔혹행위에 버금가는 대량학살과 고문을 자행해 왔다”고 질타한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유엔과 ICC의 ‘법의 지배를 통한 폭군 청산 작업’에 순응해 인권 유린과 반인륜 범죄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장
#국제형사재판소#독재자#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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