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북한 ‘똑바로’ 알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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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한 북한 동포들의 다양한 생활과 생각을 알리는 것이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토크 콘서트를 준비했다.”

재미동포 신은미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종북 논란에 휩싸인 토크 콘서트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북한에 가서 직접 보고 들은 것만 전달했을 뿐인데 난데없이 ‘종북 아줌마’로 둔갑했다는 불만이었다. 신은미는 당분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정대로 9∼11일 대구와 부산, 전북 익산에서 남은 순회 콘서트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종북 콘서트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신은미는 그동안 국내 강연에서 주로 자신의 북한 경험담을 얘기했다고 한다. “굶어 죽는다는 나라에 무슨 ‘꽃매대(화원)’가 많아, 먹을 것도 없어 죽는다는데”라고 말했고, “북한 주민들이 젊은 지도자(김정은)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고, 희망에 차 있는 게 보였다”고도 했다. 북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북한 바로 알기’의 21세기 버전으로 부를 만하다.

‘북한 바로 알기’는 1980년대 대학가에서 광풍처럼 불었다.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형성된 정권 차원의 반공교육에 반기를 든 것이다. 과거엔 ‘북한 사람은 얼굴이 빨갛다’ ‘김일성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조악한 북한 비방이 기승을 부린 적도 있었다. 북한 바로 알기는 이런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 무렵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상징적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바로 알기는 차츰 왜곡되어 갔다. 잘못 알려진 현실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은 퇴색하고 북한체제 찬양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는 차원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이 운동의 배후에 민족해방(NL) 주체사상파 그룹이 개입하면서 종북 논란을 키운 측면도 있다.

2004년 2월 법정에 선 민혁당 출신 홍진표는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은 당시 주사파들이 주체사상을 대중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내세운 수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신은미의 강연은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 북한이 보여주려 한 것만 보고 들었다는 사실이다. 한 번이라도 방북한 적이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북한에서 사전 각본 없이 아무 장소나 들어가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필자가 만난 방북 인사들은 “북측이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다면 신은미식(式) ‘북한 바로 알기’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북측이 짜놓은 틀 속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자유주의연대는 10년 전에 탈북자들을 상대로 벌인 면접조사를 토대로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북한의 진실’을 펴냈다. ‘무상 의료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북한의 병원과 진료시설은 전국적으로 57개소밖에 없고, 시설과 약품도 30년 이상 된 것이 많다’ ‘주민들은 거주지 반경 40km 이내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가려면 여행증명서가 필요하다’ ‘평양에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지만 평양에서 살았던 탈북자들도 잘 모르고, 큰 절에 사는 승려들은 노동당 간부나 공작원 출신이 대부분이다’ 등이다. 신은미가 북한 실상을 전하려면 이런 증언들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내가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전체 속에서 연관된 부분을 짚어내지 못한다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북한 바로 알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똑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북한#바로 알기#토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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