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으려 서울 왔는데… 알바에 허덕이다 느는건 빚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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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혁신 '골든타임']<11>청년이 살고 싶은 나라로 빚에/허덕이는 청춘들
대학생 4명중 1명꼴 빚더미… “좋은 회사 가려면 학벌 가장 중요”
서울-수도권大 진학… 대부분 자취… 시급 5300원 받아 월세 내면 빈손
“학비 수백만원, 결국 대출밖엔…”

《 ‘열심히 살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의 눈에 비친 우리 대학생의 모습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 그렇다고 학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비싼 등록금에 주거비까지 해결하려면 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 보니 한국 대학생 4명 중 1명은 빚을 지고 공부를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빚을 져야 하는 이 땅의 청춘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을까. 그 대안을 살펴봤다. 》
사업자금을 빌린 건 아니다. 보증을 잘못 선 것도 아니다. 돈을 흥청망청 쓴 적도 없다. 공부만 하는 대학생이다. 그런데도 빚이 많다.

최근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가 전국의 21개 대학 재학생 865명을 대상으로 ‘한국 대학생의 삶과 사회인식’을 조사한 결과 “빚이 있다”고 답한 학생이 4명 중 1명꼴인 25.8%였다. 학생들의 평균 빚은 642만 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대부분이 최저임금(2014년 기준 시간당 5210원)을 받는 사정을 감안하면 하루 4시간씩 일해 한 푼도 쓰지 않고 1년 가까이 모아야 갚을 수 있는 돈이다. 대학생들이 왜 빚을 지고 살까.

여대생 강현주 씨(22·단국대 3학년)에게는 비가 오는 날이 더 좋다. 눈비가 오는 날에는 배달을 한 번 나갈 때마다 수당으로 500원을 받는다. 맑은 날보다 100원이 더 많다.

강 씨는 경기 용인에 있는 학교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에 더해 배달 수당을 따로 받을 수 있어 매장 내 아르바이트보다는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1주일에 5일을 일하고 90만 원가량을 번다. 시급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5300원을 받는다. 이렇게 번 돈으로 월세를 낸다. 나머지는 책값과 휴대전화 요금, 식비 등으로 쓴다. 월세 60만 원인 원룸에서 친구와 함께 사는 강 씨는 방값을 반씩 내고 있다. 입학 후 첫 학기에는 6개월에 70만 원인 4인 1실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1학년 2학기 때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져 월세로 옮겨야 했다. 한 학기 400만 원인 등록금은 부모님이 대주고 있어 다행히 지금까지는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됐다.

강 씨는 전남 순천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부모님은 딸이 집에서 대학을 다니기를 원했다. 순천에도 대학은 있다. 집안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강 씨는 수도권 대학을 택했다. “취업 때문이죠.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이 지방대보다는 아무래도 유리할 걸로 생각했어요. 기업들이 그런 걸 많이 따지니까요.”

이런 생각을 강 씨만 하는 건 아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달 취업준비생 435명에게 “기업이 채용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볼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학벌(출신대학과 학력)”이라는 대답이 21.4%로 가장 많았다. 업무능력(18.5%)이나 경험(16.1%) 인성(15.9%)보다 학벌이 취업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부산에서 고교를 다닌 김태우 씨(23)도 비슷한 생각으로 수도권인 경기 성남의 가천대에 진학했다. 소프트웨어설계경영학과 졸업반인 김 씨는 “취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공모전 참가와 같은 스펙을 쌓기에도 수도권이 유리하다”고 했다. 아무 연고가 없는 곳으로 왔으니 김 씨 역시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입학 후 줄곧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김 씨는 지난해 7월 월세 45만 원인 원룸으로 옮겼다. 작년 6월에 휴학하면서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휴학을 한 건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한 학기 470만 원인 등록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대출을 받으면서 1800만 원의 빚이 생겼다. 휴학 후 1년간 번 돈으로 대출금의 일부를 갚고 올 2학기 등록금을 마련했다.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학생이라면 사정은 대체로 김 씨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60%가 1주일에 최소 3일 이상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말도 없이 1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도 6.4%나 됐다. 사정이 이러니 학업에도 영향을 받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의 77%가 “학교 공부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성남에 있는 특성화고교를 졸업한 여대생 정민주(가명·23) 씨도 일찌감치 고1 때부터 ‘어떻게든 서울 소재 대학에 가겠다’고 결심한 경우다. 역시 취업 때문이다. 비슷한 수준의 대학이라도 수도권보다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무래도 나을 것으로 여겼다. 명지대 3학년인 정 씨는 “성남에도 대학이 있지만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싶었다”며 “학과보다는 대학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입학 후 1년은 성남에서 학교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까지 통학했지만 지금은 학교 근처에 월세를 얻어 산다. 왔다 갔다 3시간 넘게 걸리는 통학에 지쳐서다. 월세를 해결하기 위해 주말에는 편의점과 카페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60만 원가량을 벌어 이 중 47만 원을 집세로 내고 나면 남는 건 13만 원뿐. 등록금과 턱없이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대출 말고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15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학비 마련 부담(34.5%), 취업 걱정(28.4%), 생활비 마련 부담(24.3%). ‘대학 생활이 불행하다’고 말한 학생들이 꼽은 불행한 이유 상위 3가지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들의 문제가 장기화되면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양소리 인턴기자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졸업
#스펙#알바#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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