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자녀 뽑는 ‘로펌 음서제’… 로스쿨 父子 사제관계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도마오른 로스쿨-로펌 공정성]
1~3기 로스쿨 졸업생 대상 학부모 직업-로펌 취업현황 조사

#사례 1.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교수 자녀 3명이 아버지의 제자로 입학했다. 부산의 한 로스쿨 교수는 같은 학교 1기생인 딸과 논문을 함께 쓰고 아들도 제자로 맞았다. 이처럼 스승과 부모가 같은 ‘로사부일체(Law·법-師父一體)’ 학생이 누군지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례 2. 국내의 한 유명 로펌에서는 최근 구성원 변호사의 딸이 입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내부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입사를 포기했다. 이 로펌은 다른 구성원 변호사의 자녀도 두 명이나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 로펌의 변호사 초임 연봉은 1억 원이 넘는다.

로스쿨은 변호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동시에 예비 판검사를 배출하는 ‘사법 분야 공직 등용문’이다. 지난 3년간 로스쿨을 졸업하는 동시에 매년 35∼42명의 검사가 배출됐다. 내년부터는 로스쿨 1기생들의 판사 임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판검사 양성소’로서 로스쿨-로펌의 선발 과정은 공정성을 잃고 있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있는 집안 자녀가 (입학 또는 채용에) 유리하다’는 얘기와 함께 ‘현대판 음서제(蔭敍制·고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 없이 상류층 자손을 특별히 채용하는 제도)’라는 말까지 나온다.

○ ‘유전입학 무전포기’… 높기만 한 진입장벽

로스쿨의 한 해 학비는 국립대 1052만 원, 사립대 2075만 원이다. 교재비와 기숙사비까지 합치면 3년간 6000만∼1억 원이 든다. 한 해 평균 2000만 원 이상의 교육비를 댈 수 있는 가정형편이 아니라면 로스쿨 진학은 ‘언감생심’인 게 현실이다.

로스쿨은 한 해 2000명 정원 중 110∼130명 정도를 사회적배려대상자로 선발한다. 그러나 2012년 감사원 감사 결과 자격 미달자가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비용 부담 때문에 입학을 포기한 학생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2009∼2012년에는 310명이 중도에 자퇴했다. 학비 등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형 로펌은 고소득이 보장돼 인기가 높다. 김앤장, 태평양, 광장, 율촌, 세종 등 대형로펌은 초임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로펌에 입사하면 1년 만에 로스쿨 학비를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로펌에 들어가기란 로스쿨에서 1, 2등 했던 학생도 쉽지 않아 ‘하늘의 별따기’로 불린다.

○ 일부 로펌, 미래 위해 있는 집안 자제 영입


동아일보 취재 결과 로스쿨 1∼3기 졸업생 중 법관, 의사, 고위 공무원, 대학교수 등 이른바 전문직 부모의 자녀는 250여 명으로 전체 4500여 명의 5.5% 정도였다. 그중 고위 법관, 기업 임원, 대사, 로펌 대표 자제 등 유력인사 자제들이 대형 로펌에 취업한 사례는 30명이 넘었고 일부는 의심스러운 사례도 있었다. 고액 연봉으로 로펌 못지않게 인기가 높은 한 대기업은 로스쿨 1기인 부사장 자녀를 사내 변호사로 취업시켰다. 대한변협도 고위 임원을 지낸 한 인사의 자녀를 산하기관의 변호사로 채용했다. 한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당 바로 옆 지역구 의원이었던 인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법조계 공공기관에 올해 취업했다.

오너 지배구조인 A, B로펌은 구성원 변호사 자제들의 채용에 관대했다. 고위 법관 자제는 무조건 뽑아 졸업생들 사이에 ‘귀족 로펌’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도 있었다. 한 유력 로펌 관계자는 “대형사건 수임과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되는 ‘있는 집안’ 자제 선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심을 받는 당사자들의 로스쿨 동기들과 로펌 관계자 등은 “(실력으로) 갈 만한 사람이 갔다”는 평가를 내놨다. 최근 한 대형 로펌에 취업한 대법관 아들은 인턴을 했던 다른 로펌에도 합격했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지만 입사 전부터 ‘고위 법관 자제 우대 선발로 유명한 모 로펌에 들어갈 것’이란 소문에 휩싸였다.

○ 선발 기준은 베일에 싸여 있어

그럼에도 돈과 ‘백’ 없이는 로스쿨 입학과 로펌 취업이 어렵다는 얘기가 그치지 않는 이유는 로스쿨-로펌 선발 과정에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로스쿨은 ‘법학적성시험(LEET)’을 보지만 변별력이 낮아 사실상 ‘면접’이 합격 여부를 좌우한다. 취업 자료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로스쿨 성적은 전국 25개 로스쿨 간 편차로 객관적이지 못하다. 유일한 공인시험인 변호사시험 성적은 ‘비공개’다. 응시자는 합격 여부만 통보받는다. 구체적인 성적은 자신은 물론이고 로펌이나 공공기관에도 공개되지 않는다.

사법시험 출신과 병행해 선발하는 로클럭(재판연구원), 검찰, 경력 법관 임용 과정에서 유독 로스쿨 출신에게만 ‘특혜’ 시비가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법시험으로 법조인을 충원하는 기존 선발체제에서는 고위 법관의 아들이라도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법조인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면접 등 주관적인 요소가 선발에 영향을 미치는 로스쿨-로펌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졸업생들은 판검사 임용이나 로펌에 취업할 때 관행적으로 연수원 성적을 내야 했다. 연수원생들끼리 서로 성적을 알고 있기 때문에 로펌 취업 때도 뒷말이 없었다”며 “이제 투명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법무법인 세종 “공정하게”… 입사지원서 ‘가족란’ 삭제 ▼

“변호사 시험성적 공개” 주장 잇따라


법무법인 세종은 입사지원서 가족관계란(왼쪽)을 단체활동란(오른쪽)으로 대체해 특혜 논란을 없애기로 했다. 법무법인 세종 제공
법무법인 세종은 입사지원서 가족관계란(왼쪽)을 단체활동란(오른쪽)으로 대체해 특혜 논란을 없애기로 했다. 법무법인 세종 제공
법무법인 세종은 올해 겨울 인턴 선발부터 입사지원서에 가족관계란을 없애기로 했다. 여당 대표를 지낸 안상수 경남 창원시장 자녀의 입사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터에 최근 인사위원회에서 실력이 좋은 고위층 자제를 ‘공정성’ 시비를 불식하기 위해 일부러 뽑지 말자는 의견이 나오자 차라리 가족관계란을 없애자고 결론 냈다.

당장 내년부터 로스쿨 1기생들을 경력법관으로 뽑는 법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 선발의 공정성은 사법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다”라고 토로했다. 대법원은 최근 로스쿨 출신에 대한 면접을 늘리고 별도의 서면평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로스쿨 출신 법조인의 취업 등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전준호 대변인은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고 취업 자료로 제출하는 방안이 ‘음서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즉효약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방대 로스쿨에서도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자는 의견이 많다. 로스쿨 간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방의 한 국립대 로스쿨 교수는 “지방에서 1, 2등 하는 학생이 대형 로펌에 들어가기는커녕 공익법무관도 못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성적 공개를 꺼린다는 건 취업 불이익이 상대적으로 적은 서울 상위권 로스쿨들의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 성적 공개가 로스쿨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시험에 의한 선발’에서 ‘교육에 의한 양성’으로 바뀐 법조인 교육 체계에 역행한다는 것.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면 시험 과목에만 치중하는 ‘변시 수험학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로스쿨#로펌#로펌 음서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