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전략적 사고]쇠퇴하던 서커스산업에서 ‘태양의 서커스’는 어떻게 성공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과감히 버리니, 비로소 얻더라

공연업계의 글로벌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에는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가 없다. 조련사 훈련비와 스타 곡예사 영입 비용을 예술성을 확보하는 데 투자했다. 태양의 서커스 중 한 장면.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공연업계의 글로벌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에는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가 없다. 조련사 훈련비와 스타 곡예사 영입 비용을 예술성을 확보하는 데 투자했다. 태양의 서커스 중 한 장면.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로마가 시민에게 제공한 것은 빵과 서커스였다’고 할 정도로 서커스의 역사는 오래됐다. 영화 ‘벤허’의 배경이 된 대전차 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서커스는 공중그네나 공중사다리, 줄타기와 같은 곡예사의 묘기와 접시돌리기, 저글링, 자전거 오토바이 묘기같이 도구를 사용한 곡예, 그리고 사자 호랑이 곰 코끼리의 동물 묘기를 선보이며 발전해왔다. 서커스를 떠올렸을 때 가장 인기가 많은 곡예사와 동물 묘기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미국의 태양의 서커스에는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가 없다. 그 대신 서커스에 스토리를 더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제공하고 음악과 무용을 통해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인류 역사와 함께했지만 다른 장르에 밀려 추락하던 서커스산업에서 태양의 서커스는 연매출 1조 원, 순이익 25%를 내며 공연업계 최강자로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블루오션의 개척, 적극적인 마케팅, 첨단 정보기술(IT) 활용 등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성공의 출발점이 전략적 사고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명확히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서커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 인식되던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를 버린 것이다.

서커스산업의 쇠퇴로 스타 곡예사의 수가 줄어 이들을 섭외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었다. 더욱이 동물 묘기의 경우 숙련된 동물 조련사와 동물 확보에 따른 비용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단체의 압력과 비난에도 대응해야 했다. 기존 서커스단은 수익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타 곡예사와 동물 조련사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태양의 서커스는 이를 과감히 버림으로써 서커스에 스토리와 예술성을 가미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식의 서커스를 선보였다. ‘버려야 비로소 얻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직접 보여준 것이다.

스티브 잡스도 ‘버림의 미학’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경영자였다. 잡스는 1997년 도산 위기에 처한 애플의 구원투수로 복귀했다. 1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매킨토시 제품을 며칠간 살펴보며 씨름하다가 ‘이건 미친 짓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총 네 가지 제품에만 주력하고 나머지 제품은 모두 포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기업도 그렇고 제품도 그렇다”고 일갈했다. 처음에 회의적이었던 직원들을 설득한 끝에 잡스는 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고 결국 도산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해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였던 DEC는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한 기업이다. DEC는 컴퓨터산업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1998년 결국 컴팩(컴팩은 나중에 HP에 인수됨)에 인수됐다. 1992년 DEC는 임원들을 모아서 회사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크게 세 가지 전략이 나왔다. 최고경영자인 켄 올슨은 선택을 내리지 못했고 회의 참가자들에게 합의를 요구했다. 이는 완전한 실수였다. 세 가지 의견이 모두 섞이면서 이도저도 아닌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선택’이라는 어려운 일을 피하고 참석자의 의견도 무시하지 않는 해결책을 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회사는 회복 불능이 됐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전략적 의사결정은 상충 관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는 스피드와 일관성으로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다. 맥도널드의 가치사슬은 스피드와 일관성에 초점을 맞춰 구성돼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성장이 정체되자 맥도널드는 고객이 자신의 버거에 들어갈 재료를 선택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Made for You’ 캠페인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매장의 햄버거 조리 공간을 개조해야 했는데 이에 소요된 비용만 5억 달러에 달했다. 고객의 기호에 따라 버거를 만들었더니 스피드와 일관성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맥도널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이 정책을 포기했다.

왜 이토록 선택이 어려운가. 유능한 경영자들이 선택을 미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택에 따르는 심리적 조직적 정치적 장애물 때문이다. 경영자를 포함해 인간은 누구나 선택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 왜냐하면 선택에는 위험이 따르고, 하나를 선택하고 버린 것에 대해 미련이 남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하지 않고 여러 대안을 계속 갖고 있으면 나중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거나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도 한몫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좀 더 확실해지고 그러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변수가 생기고 불확실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선택과 포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버림과 포기에는 자원 배분의 변화가 따르기 마련이며 이는 조직적 난관과 고통을 수반한다. 하나를 버리면 손해를 입는 집단이나 사람들은 이에 반발한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이런 조직적 정치적 난관을 헤쳐 나갈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메모리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1년이 지나서야 실제로 철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영진을 비롯한 엔지니어, 영업사원, 고객 등을 만나 설득하고 타협하는 데만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때의 고통을 훗날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이라고 불렀다.

전략은 모호한 열망이나 희망사항이 아니라 다른 길은 모두 버리고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수많은 희망과 꿈,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하나만 택하고 나머지를 모두 포기하는 것에는 심리적 조직적 정치적 어려움이 따른다. 전략의 대가인 리처드 루멜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전략을 만드는 것의 근본적 어려움은 논리나 분석이 아니라 ‘선택’ 그 자체에 기인한다고 통찰했다.

전략의 출발점은 ‘버림’이다. 태양의 서커스가 새로운 형식의 세련된 서커스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서커스의 알파와 오메가였던 스타 곡예사와 동물 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포기와 버림의 의미를 이해할 때 전략은 기업에서 생명을 얻게 된다. 고르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버려야 얻을 수 있다.’

허문구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moongoo@knu.ac.kr

정리=정지영 기자 jjy0166@donga.com
#태양의 서커스#서커스#스토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