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70억 대박작품도 순익 고작 1억… 빚내서 무대 올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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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내빈 뮤지컬산업]<上>빚폭탄 돌리는 제작사

《 한국 뮤지컬 산업이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다.

중견 공연제작사 뮤지컬해븐이 개막을 앞둔 뮤지컬 ‘스위니 토드’와 ‘키다리 아저씨’의 공연을 동시에 취소한 데 이어 지난달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최근엔 설도윤 한국뮤지컬협회장과 공연계의 ‘큰손’ 인터파크가 날선 공방을 벌였다. 설 회장이 “티켓 판매 시장을 독과점한 인터파크가 제작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포문을 열자 인터파크가 반박하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뮤지컬계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       
       

뮤지컬 ‘레베카’(왼쪽 사진)와 ‘황태자 루돌프’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배우 캐스팅과 무대 세트 등에 많은 제작비가 투입돼 실제 제작사가 손에 쥔 수익금은 각각 1억 원과 6000만 원에 그쳤다. 동아일보DB
뮤지컬 ‘레베카’(왼쪽 사진)와 ‘황태자 루돌프’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배우 캐스팅과 무대 세트 등에 많은 제작비가 투입돼 실제 제작사가 손에 쥔 수익금은 각각 1억 원과 6000만 원에 그쳤다. 동아일보DB
지난해 국내 초연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레베카’는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작품으로 꼽힌다. 제작비 49억 원에 7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손에 쥔 수익금은 1억 원에 불과했다.

배우 개런티와 공연장 대관료 등의 제작비를 비롯해 로열티 부가세 티켓수수료 등을 제하고 투자자와 이익을 배분한 결과 3억 원이 남았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는 “비 오는 장면을 추가하는 등 무대 세트를 보강하느라 당초 계약한 제작비(45억 원)보다 4억 원을 더 썼지만 추가 비용은 절반만 인정받아 나머지 2억 원을 떠안고 나니 최종 수익금이 1억 원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거품 현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물론이고 실패한 작품까지 한국에서 속속 공연되고 있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은 한국에서 매출의 15%에 해당하는 로열티와 각종 관리비용을 받아 브로드웨이에서 입은 손실을 메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 급증하는 작품, 짓눌리는 업계

뮤지컬 업계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지나치게 많은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아일보가 뮤지컬 업계 관계자 20명을 대상으로 뮤지컬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2개씩 복수 응답), 제작자들은 ‘과다한 작품 수’(15명)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어 제작비 상승과 배우·스태프 부족, 투자 부족과 관객 부족 순이었다.

대표적인 티켓 판매대행사로 공연장 블루스퀘어를 운영하는 인터파크에 따르면 2008년 1544편이었던 뮤지컬 작품 수가 지난해 2500편으로 5년 사이 62% 증가했다. 같은 작품이라도 공연장이 바뀌면 다른 공연으로 집계됐기 때문에 실제 작품 수는 연간 400편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10년 전에는 연 50여 편 수준이었다.

뮤지컬시장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100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커졌다. 시장이 3배로 늘어나는 동안 작품 수는 8배로 증가했다. 시장이 커지자 ‘뮤지컬이 돈이 된다’며 너도나도 제작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는 EMK뮤지컬컴퍼니의 ‘황태자 루돌프’ 역시 64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제작사의 최종 수익은 6000만 원이었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흥행한 작품도 제작사 수익률이 이 정도인데 다른 작품은 오죽하겠냐. 이러다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시한폭탄, 터지는 건 시간문제”

뮤지컬 제작비는 10년 전에 비해 5배 이상으로 올랐다. 작품 수가 급증했지만 배우와 스태프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조승우 김준수를 제외한 톱 배우의 출연료는 대작 공연의 경우 회당 10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연급 배우들이 한 해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이 3편 정도인데 제안받는 작품은 40∼50편에 달해 출연료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제작자는 “제작자들이 경매하듯 출연료를 높여 부르면서 한국 톱 배우 10여 명은 브로드웨이 휴 잭맨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다. 작품 하나 하면 집 한 채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배우와 스태프의 인건비가 제작비의 40%, 많게는 절반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제작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작품이 성공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성공하더라도 제작사가 손에 쥐는 돈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인 데 비해 실패하면 순식간에 수십억 원의 빚을 안게 된다. 또 다른 제작자는 “뮤지컬해븐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투자자마다 ‘다음에 쓰러질 곳은 어디냐’고 가장 먼저 물어 본다”고 말했다.

뮤지컬업계에서는 “시한폭탄 초침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한 뮤지컬 투자자는 “제작사들이 작품을 계속 올려 빚으로 빚을 막는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수익률 악화로 투자금이 급격히 줄고 있어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김정은 기자
#뮤지컬#레베카#제작비#수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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