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버먼 박사 “자살에는 사전 신호 있어… 심리부검으로 막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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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연구 전문가 美 버먼 박사 방한

“자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개인이 가진 경험과 관계 속에서 느낀 우울, 분노, 무기력 등이 목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맞이하는 ‘종착역’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국제자살예방협회 회장 등을 지낸 심리적 부검의 대가 앨런 버먼 박사(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사업단이 8일부터 진행하는 ‘심리부검 훈련 프로그램 워크숍’의 강연자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심리부검은 자살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삶을 추적해 그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선 2013년 초 첫 심리부검이 진행됐다.

―자살에 대한 경찰 조사와 심리적 부검의 차이는 무엇인가.

“경찰 조사가 하나의 자살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게 목적이라면, 심리적 부검은 수백 건의 자살 사건에서 일정한 패턴(자살 전 징후, 선호하는 자살 장소 및 방법 등)을 찾는 것이다.”

―심리적 부검이 정책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나.

“자살 예방 정책들이 ‘헛다리 짚기’가 되지 않도록 한다. 미국에서 철도 자살 사건을 막겠다며 핫라인 번호를 적은 표지판을 설치했다. 그런데 심리부검을 해보니 최근 자살자 55명 중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이런 분석 없이 돈 낭비만 하고 있었던 게 확인된 셈이다.”

―자살 전 징후라는 게 따로 있나.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자살 시도 이전에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 혼자 가만히 있거나, 죽음의 방식이나 내세(來世)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록 등을 다 삭제하고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잦아진다. 다 아는 내용 같지만 막상 주변에서 이런 징후를 봐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심리부검을 바탕으로 정리된 자살 징후들을 국가 차원에서 개인과 가정에 홍보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 투입된 경찰관이 자살을 했는데….

“소방관, 군인, 경찰관 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에 노출되기 쉬워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이 경우, 심리부검을 통해 개인적 특성뿐 아니라 자살률이 높은 직업군의 조직적 특성도 패턴화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한국의 심리부검은 도입 단계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 가족들은 자살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이러면 데이터 수집이 어렵다.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선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조사관을 양성해야 하고, 망자에 관한 정보 보안 체계를 갖춰야 한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자살#PT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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