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숭호]‘남 고통’은 외면… ‘내 고통’만 풀겠다는 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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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숭호 기자
조숭호 기자
“왜 이미 해결된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나? 그 (납북자) 문제가 양국 관계의 전부인가?”

22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일본 기자들을 만난 북한 외무성의 류성일 과장(일본 담당)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3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북-일 국장급 협의에서 납북자 문제가 제기되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신경질적인 답변이었다. 북한의 주장은 ‘일본인 납북자는 13명인데 그중 생존자는 일본으로 귀국했고 사망자의 유골은 모두 반환했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은 ‘납북자가 최소 17명이며 2004년 송환된 요코타 메구미(橫田惠)의 유골도 가짜’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일본 당국과 언론은 자신들이 몰아세운 북한 당국자의 모습이 바로 일본의 모습과 판박이로 닮았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납북자’란 단어를 ‘위안부’로 바꾸기만 하면 그렇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 언제까지 한국은 우리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것인가. 위안부 문제가 한일관계의 전부인가’라고 주장한다. 국제사회에 ‘한국 피로감(Korean fatigue)’이라는 용어를 퍼뜨린 장본인도 일본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되던 1965년 당시에는 위안부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 문제를 몰랐으니 협상에서 다뤄지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2011년에는 위안부의 배상청구권을 챙기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나왔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 문제를 협의하자는 한국 정부의 요구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일본이 북한을 향해서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하고 있다. 2002년 9월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언제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이런 수준의 직접적인 사죄를 한 적이 있었나.

납북자와 위안부 문제는 모두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 비인도적 행위이자 범죄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피해자가 용서해야 비로소 해결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말만 하며, 피해자의 가슴에 더 깊은 상처를 만들고 있다.

조숭호·정치부 shcho@donga.com
#일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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