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삶 밤새 쏟아내던 탈북엄마들, 같이 우는 것밖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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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제3국의 북녘 아이들]취재기자 3인의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

동아일보는 ‘준비해야 하나 된다-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를 맞아 신년 기획으로 ‘제3국의 북녘 아이들’을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했다.
동아일보는 ‘준비해야 하나 된다-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를 맞아 신년 기획으로 ‘제3국의 북녘 아이들’을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했다.
《 ‘북한이 내몰고, 한국도 품지 못한 우리의 아이들’을 취재했던 기자 3명의 가슴앓이가 쉽게 낫지 않는다. 이 아이들을 만나기도 어려웠고, 그 아픈 사연을 듣는 건 더 힘들었다. 같이 울다가 오히려 그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동아미디어그룹 연중기획 ‘준비해야 하나 된다-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를 맞아 기획한 ‘제3국의 북녘 아이들’ 시리즈는 이정은(정치부·영국 취재), 김정안(국제부·미국), 이샘물(정책사회부·북-중 접경지역) 기자가 눈물로 취재하고, 울면서 쓴 편지 같다. 통일코리아 프로젝트의 태스크포스(TF) 멤버인 3명이 28일 서울 동아미디어그룹 회의실에서 만나 기사로 못다 쓴 이야기를 나눴다. 》
‘제3국의 북녘 아이들’ 시리즈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자 3명이 28일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 모였다. 북-중 접경지역의 탈북 어린이들을 취재하고 온 이샘물 기자(가운데), 영국과 미국에 정착한 북녘 아이들을 각각 만나고 온 이정은(왼쪽), 김정안 기자(오른쪽)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제3국의 북녘 아이들’ 시리즈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자 3명이 28일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 모였다. 북-중 접경지역의 탈북 어린이들을 취재하고 온 이샘물 기자(가운데), 영국과 미국에 정착한 북녘 아이들을 각각 만나고 온 이정은(왼쪽), 김정안 기자(오른쪽)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만나기도 어려웠던 ‘우리 아이들’

▽김정안=섭외과정부터 참 힘들었어요.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드러내 놓기보다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아픈 과거는 다 잊고 살고 싶다’ ‘초면의 기자에게는 아무 얘기도 하기 싫다’는 부정적 반응이 많았어요.

▽이샘물
=하필 제가 중국에 갔을 때가 장성택 숙청 직후였어요. 기자라는 신분을 노출시키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공항에서 만난 한 활동가가 “혹시 명함 가져왔으면 바로 다 찢어서 버려라”고 했어요. 순간 솔직히 겁이 좀 났어요. 이 활동가는 보안을 위해 휴대전화 네 대를 들고 다니더군요.

▽이정은=영국에서는 북녘 아이들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인터뷰하면서 기분이 묘해졌어요. 10세 안팎의 어린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의 비참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정말 낯설고 어색했어요. 또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무척 아팠어요.

○ 함께 울다가 중단된 취재

▽김정안=저도 미국에서 인터뷰한 서철수(가명·27) 씨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짠해요. 탈북자인 아버지가 미국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어머니를 살해한 뒤 자살했대요. 부모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철수 씨가 젖은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고 씩 웃으며 의연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걸 보면서 제가 눈물이 너무 나서 난감했어요.

▽이샘물=그래도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에 정착한 탈북자와 그 아이들의 삶은 나은 편인 것 같아요. 북-중 접경지역에서 만난 탈북 여성들과 아이들의 삶은 처참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인신매매 당해 중국인 남편과 살고 있는 탈북여성 6명과 새벽 2시가 넘도록 얘기를 나눴어요. 때론 가슴을 치고, 때론 눈물을 흘리며 기구한 인생을 쏟아냈어요. 중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호적도 없고, 아무 기록도 없는 ‘까만 사람들’이라고 부를 때 너무 서글프대요. 같이 울어주는 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이정은=영국에서 만난 탈북 부모들은 하나같이 “남한에서는 아이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저도 그래요’라는 눈빛을 보냈어요. 첫째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걱정돼서 자꾸 한숨이 나와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대학까지 나온 제가 이런 공포심이 드는데 탈북 엄마들은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샘물=북-중 접경지역으로 나온 탈북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용어가 ‘석탄 도둑질’이에요. 광산지역에서는 석탄을 도둑질해 팔아 생계를 잇는다고 해요. 한 탈북여성은 “석탄 도둑질을 하고 집에 왔더니 도둑이 들어서 걸어놨던 옷들을 다 훔쳐갔더라”고 했어요. 서로 훔치고 도둑맞으며 사는 거예요.

○ “제3국의 북녘 아이에게 가장 절실한 건 정체성”

▽김정안=미국 출장 중에 만난 한국과 미국의 북한전문가들은 “미래의 통일 주역이 될 탈북 아이들을 (한국) 정부가 나서서 관리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지 못하면 나중에 되레 ‘반(反)통일 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많이 했어요.

▽이정은=정부도 정부지만 한국 사회가, 한국 사람들이 마음으로 이들을 더 품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내 자식만은 나 같은 2등 시민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한국을 떠났다”는 탈북 엄마들의 호소가 가슴에 맺혀요. ‘아, 우리가 이들에게 이런 인식을 심어줬구나…’ 하는 반성이랄까요.

▽이샘물=우리 사회가 탈북자 같은 소수자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가 참 힘들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어요. 기회가 너무 부족하고,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도 심하다는 것이에요.

▽김정안=미국에서 만난 조은혜 씨(23·여)는 그런 면에서 미국 사회가 훨씬 편하다고 했어요. 미국인들이 자신을 그저 ‘코리안 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으로 대해준다고요. 참, 얼마 전 새해 안부를 겸한 e메일을 은혜 씨에게 보냈는데 가슴 찡한 답장이 왔어요. 이 기회를 빌려 은혜 씨를 포함해 ‘제3국의 북녘 아이들’ 기획취재에 응해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김 기자가 공개한 은혜 씨의 e메일 내용은 이랬다.

“기자 언니,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힘든 애 만나지 마시고, 쉬운 사람들만 일년간 만나시기 바랍니다….”

정리=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통일#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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