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과 독대… 무슨 대화 나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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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63>지학순 구속

1974년 7월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이듬해 2월 석방되는 지학순 주교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1974년 7월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이듬해 2월 석방되는 지학순 주교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의 면담은 7월 10일 저녁,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추기경은 저녁 6시 명동성당에서 서둘러 청와대로 향했다. 지방에서 상경한 신부들과 수녀들은 철야 기도를 하면서 면담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추기경은 평화신문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청와대에 도착했더니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허리를 90도 꺾다시피 인사를 하는 신 부장의 ‘과잉 환대’에서 이번 사태를 온건하게 해결하려는 중앙정보부 수뇌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날 면담은 박 대통령이 먼저 시국에 관한 생각을 얘기하면, 추기경이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추기경은 “서로 상대방 말을 경청하는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과 마주앉아 본 적은 많았지만 가장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이 그 자리였다”고 회고한다. 이날 대화록은 추기경의 회고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이날 대화를 재구성해본다.

먼저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종교란 마음의 정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정치·경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고유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고,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자 추기경은 “대통령께서 종교의 역할을 그렇게 보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답한다.

“그런데 한번 달리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종교나 교회에 가장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개개인의 마음뿐 아니라 사회를 도덕과 윤리로 정화시켜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정부패로 썩어가는 데도 교회가 수수방관한다면 직무유기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교회가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본권이 유린당하거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느님 모상(模像)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인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추기경의 회고록에는 대화 내용만 기록되어 있을 뿐 말하는 사람의 표정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종일관 두 사람의 대화가 진지했으며 진정성이 있었다는 것은 대화록만 보아도 쉽게 짐작이 간다. 박 대통령도 추기경의 말을 경청했고 추기경도 대통령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면서 용기있고 담대하게 할 말을 다했다.

대화주제는 언론자유 문제로 넘어갔다.

대통령이 깊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언론자유를 얘기하는데 서울에서 인쇄되는 석간신문이 그날로 평양까지 가는 걸 알고나 떠드는지 모르겠어요. 남북이 분단되고 공산주의 혁명 침투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국가안보상 현 언론정책은 불가피합니다.”

추기경은 이 말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떻게 석간신문이 그날로 몇 백리 떨어진 평양까지 간단 말인가. 추기경은 “국가안보의 필요성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안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국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강한 국력이란 무력이 아니라 애국심과 단결력에서 나옵니다. 지금 국민들은 심지어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신문이라는 동아일보까지 불신하고 있습니다. 쓸 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국가안보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대화는 노동문제로까지 넘어갔다. 대통령이 “종교가 왜 노동문제에 개입합니까, 개신교에 도시산업선교회(도산·都産)라는 단체가 있지요. 기업주들은 ‘도산’이 개입하면 (공장이) 도산(倒産)한다’고 아우성입니다”라고 말하자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삼는 것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공장에 들어가면 좋은 상품이 되어 나오는데 사람이 들어가면 폐품이 되어 나온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가난을 몰아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5·16혁명을 하신 것 아닙니까? 대통령께서도 노사분규 현장에 가보시면 노동자 편을 들어주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가 하는 일을 대통령께서 하셔야 합니다.”

얘기를 충분히 나눈 것 같았다. 추기경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본론’을 꺼냈다.

“지금 신부 수백 명이 명동성당에 모여 지학순 주교님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 얘기를 너그럽게 들어주셨으니 지 주교님을 풀어주십시오.”

박 대통령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알겠습니다. 오늘 밤에 풀어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추기경은 대통령의 시원스러운 대답을 듣고 내친 김에 한 가지를 더 요청한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젊은이들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들을 죽이면 안 됩니다. 국민과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칠 것입니다.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국민의 존경심도 한층 커질 것입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그건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며칠 후 국방부 장관 이름으로 민청학련 관련자들에게 감형조치가 내려진다. 추기경은 며칠 뒤 이 조치를 접하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추기경이 명동성당으로 돌아온 그날 밤 10시, 정보부로부터 지 주교를 데려가라는 연락이 온다. 성당 뒤 수녀원으로 주거가 제한된 가석방이었다.

지 주교는 가석방 뒤 양심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독재 권력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굽히지 않은 것이다.

“제가 젊은이들에게 돈을 대서 내란을 선동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빨갱이입니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선언을 해서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추기경은 그런 그를 말렸다.

“주교님. 그건 안 됩니다. 건강도 안 좋으시고 사태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만일 주교님께서 그런 선택을 하시면 구속은 물론이고 교회도 분열됩니다. 그러면 사태를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 주교는 7월 15일 “김지하에게 돈을 준 것은 사실이나 순수한 학생운동에 민주수호를 위한 기금으로 준 것이다. 액수와 돈을 준 시일은 기억에 없으나 100만 원 내외의 금액을 1973년 초겨울에 준 것으로 기억한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그리고 다음 날 비상군법회의로부터 내란 혐의가 명기된 공소장을 전달받는다.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민청학련 구속자 가족들이 찾아와 진실을 밝혀 달라고 조르는 상황에서 지 주교는 그들 목숨을 구하려면 당신 자신이 똑같은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 주교는 이어 7월 23일 “유신헌법은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된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연행된다. 선언문에 타자를 쳐준 수녀, 영문 번역한 변호사, 현장에서 지 주교 체포를 저지한 신부들까지 줄줄이 연행됐다. 지 주교는 8월 12일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전국에서 시국기도회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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