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9명 강제북송 파문]“대사관, 밀입국 벌금 낼 돈 없으면 한국行 늦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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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거쳐 입국한 탈북자들 증언
“아동의 경우 인솔자에 납부 요구… 한국에 연고있으면 비행기표도 부담”
정부 “벌금 못내 못오는 경우는 없어”

몇 년 전 한국 입국에 성공한 탈북여성 A 씨는 4월 초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8세 아들이 도착해 대사관이 보호하고 있는데 현지 당국에 내야 하는 밀입국 벌금 300달러와 한국행 비행기 삯 400달러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 판정을 받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A 씨는 발을 동동 구르다 지난주 겨우 돈을 마련해 보냈다. 며칠 뒤 아이는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정부가 탈북동포들이 한국에 오기까지 드는 경비 지원을 중단하고 본인들이 부담하라고 하면서 탈북동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 들어간 탈북동포 중에는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라오스 정부에 내야 할 벌금 300달러를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을 거쳐 라오스까지 오면서 빈손으로 온 사람이 적지 않다.

벌금을 내지 못하면 본인은 물론 그와 함께 한국행을 기다리는 다른 탈북자도 출발이 늦춰지기도 한다. 돈이 없는 탈북아동의 벌금은 그들을 중국에서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대신 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나마 한국행 비행기 삯은 한국에 연고자가 없으면 한국 정부가 요금을 부담하지만 연고자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부담시킨다고 탈북동포들은 말했다.

태국은 몇 년 전까지 탈북자에게 6000밧(약 22만4200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못 내면 감옥에 30일 동안 가뒀다. 올 초부터 벌금 액수가 중국돈 400위안(약 7만4000원) 정도로 낮아졌다.

탈북지원 단체들은 “목숨 걸고 가까스로 제3국까지 온 탈북자들에게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고 호소한다. 이는 ‘탈북 비용’을 상승시켜 탈북 자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1509명. 이 중 90% 이상이 라오스나 태국을 거쳐 들어온다. 이들이 지난 한 해 라오스 및 태국에 낸 벌금은 2억 원에 못 미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금액은 오랜 도피 생활을 하는 탈북 동포들에겐 거액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해당국 입장에서 불법 입국자인 탈북동포들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지원하면 외교적으로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벌금을 못 내 한국에 못 오는 사례는 사실상 없으며 벌금 문제를 공식화하는 것은 앞으로 탈북자의 한국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정부 내부지침으로는 공식 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예외적으로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 돕기로 했고 실제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 구출 활동을 벌이고 있는 B 씨는 “탈북동포들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것은 탈북동포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는 헌법 정신을 정부 스스로가 어기는 것”이라며 “탈북동포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민간단체를 활용하는 등 여러 방안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주성하·조숭호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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