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도진 “나는 기대한다, 아무도 예상못한 배우의 기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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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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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12일 LG아트센터 ‘세자매’ 연출 맡은 레프 도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의 예술감독 레프 도진은 이 시대 연극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연극을 통해 우리는 클로즈업도 없고 3D도 없는 인간의 얼굴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인간의 본모습을 응시하면서 타자에 대해 눈을 뜨고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답했다. LG아트센터 제공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의 예술감독 레프 도진은 이 시대 연극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연극을 통해 우리는 클로즈업도 없고 3D도 없는 인간의 얼굴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인간의 본모습을 응시하면서 타자에 대해 눈을 뜨고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답했다. LG아트센터 제공
《 현존 러시아 최고의 연극연출가로 꼽히는 레프 도진(69)의 연극이 다시 한국을 찾는다. 4월 10∼12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안톤 체호프(1860∼1904) 원작의 ‘세 자매’다. 도진이 30년째 이끌고 있는 말리 극장 작품으론 4번째 내한공연이다. 》

2001년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 군인의 삶을 그린 ‘가우데아무스’, 2006년 7시간 반짜리 대작 ‘형제자매들’, 2010년 ‘바냐 아저씨’까지 그가 연출한 작품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란 평판이 뒤따랐다. ‘세 자매’와 ‘가우데아무스’가 소비에트 시절을 다룬 러시아 소설을 극화했다면 ‘형제자매들’과 ‘바냐 아저씨’는 러시아가 배출한 최고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희곡을 무대화한 것이다. 공연을 앞두고 도진과 e메일 인터뷰를 했다.

―당신의 작품을 기억하고 또 기대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한국 관객들은 주의력이 깊고 집중력이 강하며 반응이 빠르면서도 부드럽고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하다. 관객으로서 놀라운 조합이다. ‘세 자매’ 공연에서도 한국 관객들이 무대와 객석에서 항상 이뤄져야 하는 예술적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세계적 연출가 피터 브룩이 ‘세계 최고의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고 극찬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 배우들이 출연하는 ‘세 자매’. LG아트센터 제공
세계적 연출가 피터 브룩이 ‘세계 최고의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고 극찬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 배우들이 출연하는 ‘세 자매’. LG아트센터 제공
―당신은 ‘바냐 아저씨’에 대해서 ‘체호프 희곡의 정수(diamond)라고 평했고 ‘세 자매’에 대해선 ‘체호프 작품 중에 가장 복잡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는데….

“‘바냐 아저씨’는 체호프의 극작 중에서 가장 조화로운 작품이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 그리고 시적인 정조 뒤에는 거대한 비극적 긴장이 숨어있다. ‘세 자매’에선 이 비극적 긴장이 밖으로 터져 나와 때론 극작의 법칙과 연극의 구조까지 깨버린다. 사실 ‘세 자매’는 연극보다는 대화로 이뤄진 소설에 가깝다. 다채로운 주제, 인생의 다양한 층위, 수많은 전기가 담겼다. 그래서 제목을 ‘네 자매’(올케 나타샤 포함), ‘한 남자형제’(세 자매의 유일한 남자형제 안드레이), ‘한 의사’(세 자매의 어머니를 사랑했던 군의관 체부트킨), ‘한 장교’(둘째 마샤를 사랑하는 베르쉬닌). ‘한 남작’(셋째 이리나를 사랑하는 귀족 출신 장교 투젠바흐)으로 바꿨어도 무방하다. 이들의 서로 다른 세계가 얽혀있기에 가장 복잡한 작품인 것이다.”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을 ‘코미디’로 규정했지만 이를 연출한 스타니슬라프는 비극으로 풀었다. 스타니슬라프의 ‘사실주의’ 전통과 메이어홀드의 ‘극장주의’ 전통을 두루 계승한 당신이 해석하는 체호프 연극은 무엇인가.

“체호프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희극성을 꿰뚫어 본 유일한 극작가다. 그는 또한 인생이라는 하이 코미디의 총체적 비극성을 가장 놀랍게 표현해냈다. 인생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부조리하고 기이하게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거대하고 극적이다. 이렇게 초점을 계속 바꿔서 바라볼 때 체호프 작품에 담긴 의미의 풍부함에 다가설 수 있다. 의미의 풍성함에 있어서 체호프는 유일무이한 작가이며 한 명 더 있다면 셰익스피어 정도일 것이다.”

―말리 극장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도 감탄의 대상이다. ‘좋은 배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들려 달라.

“나는 배우에게서 하나의 기적을 기대한다.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기적. 작가도 연출가도 배우 자신조차 기대하지 못했던 그런 기적. 연극은 하나의 현실이고 다른 삶을 위한 공간이다. 그것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배우는 내가 들려주고 설명한 것들에 대한 이해와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 경험과 뒤섞어서 나도 예상 못했고 그도 예상 못했던 뭔가를 끌어내야 한다. 새로운 작품에 착수할 때 연출가로서 내가 배우들을 놀라게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배우들 역시 리허설 기간 내내 나를 놀라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론 존재하지 않지만 3시간여의 공연시간 동안 존재하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배우는 결코 배움을 멈춰선 안 된다.” 3만∼7만 원, 02-2005-011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레프 도진#세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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