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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황호택 칼럼]‘아랫동네 한류’에 흔들리는 핵보유국

입력 2013-02-28 03:00업데이트 2013-02-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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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주간
민중의 지지 기반을 잃어버린 독재정권이 망하는 것은 핵무기 보유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핵은 외부의 적대국을 겨냥한 무기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민중의 저항을 핵으로 막을 수는 없다. 민중이 등을 돌리면 소련처럼 핵을 갖고 있어도 망하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처럼 핵개발을 포기해도 망한다.

김씨 왕조가 흔들리는 조짐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 오락프로그램이 북한 내에서 공공연하게 유행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탈북자 인터넷 신문 뉴포커스에 따르면 북한 주민 사이에선 “아랫동네 꺼(것) 있냐”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아랫동네 꺼’는 한류 콘텐츠를 지칭하는 은어다. 한국의 유명 관광지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해피선데이-1박2일’도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는 ‘아랫동네 꺼’를 갖고 있거나 시청하면 총살한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지금은 간부집 자녀들이 더 많이 본다. 이들을 다 총살했다간 체제 유지가 안 될 판이다. 탈북자들은 “단속하는 안전부 보위부 놈들이 먼저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전력 사정이 나빠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에도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장사 수완이 좋은 화교 상인들은 배터리를 부착한 DVD 플레이어를 개발해 북한으로 들여오고 있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 북한의 컴퓨터 보급 대수는 400만 대이고 휴대전화는 150만 대로 추산되고 있다. DVD보다 작아 숨기기도 편하고 많은 분량을 담을 수 있는 USB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시장의 힘도 커지고 있다. 직장에 나가면 행사에 동원되고 행동에 구속을 받지만 월급은 질 나쁜 쌀로 받는다. 하지만 직장을 때려치우고 시장에 나간 사람들은 3, 4일 고생해서 번 돈으로 질 좋은 쌀을 살 수 있다. 과거엔 김일성 김정일을 접견한 사람들이나 귤 한 상자를 선물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시장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언제든지 중국을 통해 들어온 귤을 살 수 있다. 충성을 확보하는 선물정치의 힘이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 주민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한 재스민 혁명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방도시에서도 ‘아랫동네 꺼’를 다 돌려 보는 판이니 내부적으로는 멍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결국 외부용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흔들리는 권력층과 주민을 결속시키기 위한 내부용이기도 하다.

2012년 북한 개정헌법에는 ‘핵보유국’이라고 못을 박았다. 김정은과 북한의 지도층은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핵을 보유해야만 김씨 왕조가 생존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북한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輕量化)가 완벽한 수준은 아니고, 대기권 재진입 장치를 갖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신경 쓸 일이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중장)은 “재래식 폭약과 방사능 물질을 뒤섞은 더티 봄(dirty bomb)만으로도 한국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이 5억∼6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털어놓았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연결 지어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얻어먹는 데 이골이 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거부한 이명박 정부에 보복을 했다는 해석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젠 핵을 가졌으니 5억∼6억 달러로는 성이 차지 않을지도 모른다.

치안이 불안한 남미의 바나나 국가에는 자릿세를 내지 않는 업소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마피아들이 있다. 마피아들은 자릿세로 뜯은 돈을 조직원들에게 배분해 충성을 확보한다. 북한이 외제사치품으로 핵심 집단의 충성을 매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은 세계가 인정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다. 마피아 국가가 핵까지 보유했으니 정말 ‘언터처블(untouchable)’이 돼버렸다. 천안함 식으로 얻어맞지 않으려면 스물아홉 살짜리 독재자에게 계속 갖다 바쳐야 할 것인가.

잃을 것이 없는 북한과 싸워봤자 잃을 것이 많은 우리만 손해라는 생각은 패배주의에 빠지기 쉽다. 깡통국가인 북한 자체로는 잃을 것이 없지만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권력집단은 잃을 게 무지하게 많다. 따라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정권이 무너지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어야만 북핵 억제 정책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MB정부의 고위 안보관계자는 “북한이 남북협상에서 심리전 중단을 집요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전단 살포를 비롯한 대북심리전은 북한 체제의 기반을 뒤흔드는 우리의 비대칭 전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핵무장을 할 수도 없고, 북핵 시설에 정밀 타격을 하기도 어렵다. 유엔을 통한 국제적 제재도 잘 통하지 않는다. 북한 핵을 포획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와 억제를 병행하면서 김정은 집단을 주민과 분리시키고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은하 3호를 쏘아 올리고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떠들고 있지만 정권 자체로 보면 분명히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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